갑자기 인문학에 꾳히면서 이 곳 생활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 운동에 집중한 것에 대한 권태 등도 한몫을 한 모양이다. 어쨌든 인문학의 매력이 갑자기 다가왔다. 과거 진부하게 생각해 온 학문이었으나 점차 매혹적인 학문으로 다가왔다.
인문학 동영상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박사장이 와서 같이 운동을 하러가자고 한다. 무슨 엉뚱한 소리인지를 물어볼려고 하자. 그 스스로가 치악산에 가 보았는지 물어보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자고 한다. 마침 수시간 동안 동영상을 보느나고 무료하던 참이라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리고 보니 치악산 국립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다. 차로 5-1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그곳에는 구룡사라는 절도 있었다. 막상 치악산에 들어가 보니 나무가 울창하고 공기가 역시 달랐다. 그리고 계곡도 운치가 있었다. 맑고 상큼한 공기가 선뜻 다가왔다. 그간 다소 우울한 느낌이 다 사라지는 듯하다.
걸어면서 말이 많은 박사장이 과거의 무용담을 이야기한다. 다소 반복되는 점은 있지만 나름 신명나서 이야기한다. 과거 통장에 200억원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 자신의 최대 자랑인 모양이다. 그런데 잘 나가다가 홍수 등으로 나무 등이 유실되는 바람에 사업이 망한 모양이다. 지금은 재산 등이 압류되어 좀 어려운 입장인 모양이다. 그런데 나름대로 활기가 찬 모습이 보기는 좋다.
9개의 용이 살았다는 이야기에 어울리게 계곡이 상당히 매혹적이다. 실제 용이 있다면 좋아할 만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처럼 장소를 바꾸니 기분도 좋아지는 느낌이다.
들어갈 떄에 입장료가 5,000원인데 박사장은 나름의 묘책이 있었다. 절에 수리 등 공사를 할 목적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입구의 직원이 달리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 의하면 국립공원도 절에 들어가는 사람에 대하여는 달리 입장료를 받지 못한다는 법규정의 맹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나름 요령이 있고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보니 사업도 나름 요령있게 잘 한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재기를 위하여 노력하니 좀 힘들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그마한 폭포에 갔다가 내려오니 날이 어두워진다. 마침 파전파는 곳이 있어서 같이 먹기로 했다. 파전에 막걸리를 먹을 생각이었으나 차 때문에 술은 못 마시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먹기도 멋적다. 파전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골프장에 대하여 좀더 알고 싶다고 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고 하니 아침에 잔디깍는 일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하루에 3-4시간만 일하면서 일당 6만원인데 매일 일하는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시작시간이 내장객이 그린에 도착하기전에 해야해서 아침일찍 일어나서 해야하는 데 이를 매일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일은 전정이라고 한다. 전정하는 일은 전문직이어서 하루 일당이 일반 잡역보다는 훨씬 높았다. 관심이 있으면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흥미를 느껴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어서 막국수를 먹고 학교에 왔다. 박사장도 자신의 기숙사 방이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혼자 쓰는 방이어서 나름 괜찮았다. 밤중에도 물을 주는 경우도 있어서 학교에서 자야하는 경우도 있기에 학교에서 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할 말이 많은 모양인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나름 재미가 있다. 그런데 주로 과거에 잘나가는 이야기이다. 한 때 골프 연습장을 운영할려고 했다가 부도 등 때문에 이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위로하면서 마무리를 하였다.
세상에는 모두가 다 나름의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현재이다. 과거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부질없는 일이다. 지금이 중요하고 미래의 방향이 중요하다. 그리고 보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다소 지겹고 권태롭게 느껴진다.
오전에 들은 강의에서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장자의 단편에서 송나라 상인이 머리를 삭발하고 있는 월나라에게 가서 모자를 팔기 위하여 갔다가 저자거리에서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된 순간에 대하여 이야기한 부분이 생각난다. 상인이면서 더 이상 상인이 아닌 상황. 그 순간은 바로 위기의 상황이고 또한 결단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이 곳에서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맨이면서 비즈니스맨이 아닌 상황. 물론 재투자를 위한 잠시의 휴식 내지 배움의 순간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볼수 있지만 아무래도 스스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강하게 다가온다. 물론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 더 큰 도약을 위한 일보 후퇴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런 생각으로 이 곳에 온 것이다. 그러나 이 곳 생활이 그리 만족 스럽지는 않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운 되어 있고 배우고자 하는 부분도 그리 치맬하거나 세분화되어 있지 아니하다. 특히 학생들의 모습이 조금은 실망스럽다. 물론 스스로 과거 대학교 1년차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 와닿는 모습은 실망정도를 넘어선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스스로가 다운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물론 스스로 독립적이고 스스로만의 길로 나아가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자극이 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싶은 데 그런 기운을 받기가 어렵다. 좀더 치열한 면학분위기와 좀더 강한 자극을 받고 싶다. 그렇게 하기에는 조금미흡해 보인다. 거의 8주 동안 나름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 조금은 실망스럽다.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다운 되는 느낌이다. 그나마 핫샤워를 하니 조금은 났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해서인지 의외로 잠은 잘 온다. 치악산도 구경한 나름 변화가 있었던 생각을 하면서 달꼼한 잠의 세계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