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차를 좀 멀리했다. 여러가지로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특히 가볍게 막걸리한잔을 좋아하였기에 일단 술을 마시면 기사를 불려야 하는 점 등이 불편했다. 그리고 존리가 한 말처럼 차가 필요없다는 생각을 했다. 전철과 버스야 말로 가장 훌륭한 전속기사가 딸린 안전한 대형차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간 1년간 벤츠 600을 몰지 않았다. 물론 스피커에서 나오는 감리로운 음악이 그립기도 했다. 그런데 전혀 불편함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하면 택시를 부르면 되니까... 미국의 유버가 워싱턴에 근무하는 미국사람들의 삶을 바꾼 것 처럼 한국에는 카카오택시가 편했다.
그러나 일반 고정관념상으로 보면 좀 별나게 보였으리라.....그러나 타인의 시선이나 관심에 전혀 눈길을 두지 않기로 하였으니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차를 이용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걷는 기쁨은 대단했다. 많이 걸을 수록 몸이 더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몸이 그러헥 반응하였다. 그리고 걷는 운동을 하는 스스로가 즐거웠다. 그리고 무인자동차가 아닌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성가롭다. 물론 기사가 있어도 그 기사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거의 위가 너무 상하게 된다. 뒷자리에 앉으면 항상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어떻게 가든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겠다. 그리고 화를 내지 말자. 그래봐야 내 위만 상한다. 등등....." 그래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참다참다가 말을 하게 되면 오히려 격하게 된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 그런데 차를 운행하는 것을 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주위의 풍경과 주위의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 볼 수있어서 너무 좋다.
한때 전원생활을 하려고 땅을 사고 농막을 지워서 시골길에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버스기사의 권세(?) 가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그 말투이다. 거의 반말에다가 거의 훈장이고 독재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대들거나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에는 체념과 불만이 가득해 보였으나 실제 버스기사의 권력에는 대항할 수 없다는 삶의 지혜(?)가 보였기 때문이다.
시골에는 더 골치아픈 권력다툼이 있었다. 이를 생각하면 한심스러웠다. 일제시대를 연상시키는 시골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것을 포기했다. 서울보다도 더 권력다툼내지 시위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시골의 정겨운 모습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시골사람들은 어느 정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편견과 오해라고 본다. 사실상 대다수의 시골사람과 버스운전사는 선하고 존경받을 정도로 착한 삶을 살고 있다. 실제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극히 소수의 사람들은 달랐기 때문에 그런 편견과 오해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지울수가 없으니 비록 잘못된 생각이고 느낌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지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차는 스스로만의 아늑한 사적 공간을 제공해 준다. 그기에는 스스로가 왕이고 모든 것이다 그런 즐거움 때문에 차는 나름이 매력이 있은 모양이다.
상당 시간동안 차없이 생활하니 이제 차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차를 좀 사용하려고 차를 운전해 보니 세상이 더 경이롭다. 조용한 차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물론 차없는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느껴보지 못할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 모양이다. 이제 다시 기겹게 느껴진 세상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에는 지겹고 싫었던 것들이 이제는 새롭고 경이로우니 그 얼마나 축복인가? 물론 차를 이용하는 것은 최소한도로 할 생각이기는 하다. 아무래도 걷거나 전철 등이 서울에서는 더 편리하고 시간관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건강관리 측면에서는 그보다 좋은 운동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