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age discrimination이 gender discrimination 못지 않게 민감한 단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혀 다르다.
조금 나이가 들면 그저 아버님, 어머님이다. 물론 존경의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듣느 사람으로 금 좀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자신만의 생각이 중요한 모양이다.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높게 그리고 친근하게(?) 이야기 하였으니 스스로는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런 표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그런 호칭을 받은 사람은 어떠할까? 좀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야기하는 친구는 나이가 30대 내지 40대는 되어 보이는 데 겨우 50대 후반의 사람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니......
물론 나쁜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말이 생경하다. 그리고 마치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혜택을 주는 것도 없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존경을 한다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좋은 사회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공공연히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는 장면이 많다. 물론 그런 호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호칭이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대방의 마음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만이 중요할 뿐으로 보인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러나 이 사회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의 소리가 없다. 그저 미풍양속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것은 프라이버시권 침해로 느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이를 묻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연히 나이가 많다는 것을 선언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나이에 따른 혜택은 전혀 없다.
이제는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잣대가 아니라 상대방의 시각에서 이를 바라보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법원에서는 이를 너무 강조하고 있어 보인다. 특히 성적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형사사건에서도 그와 같은 접근을 한다. 상당한 진전일까? 일반사회에서 느끼는 프라이버시권 내지 불편함과 당혹감에 둔감한 현실이 자못 불편하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이에 대하여 너무 확대하여 형사법 일반원칙을 침해할 정도로 확대하는 친절함이 자못 생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