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은 기분 좋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와의 만남에서 직접 서명까지 한 신간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선물 받았다. 감동이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어린 시절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라는 시 문구 이후에 가장 감동적인 서사시는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었다.
이 시를 읽고 나서 그 감동에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당시 어려운 시기였기 떄문에 그 시문구가 더 가슴을 울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간 시에 대하여 잘 몰랐다. 그런데 이 시를 보고 왜 시가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렸다. 그리고 더 이상의 철학적인 질문은 조용히 그만두었다. 이 시는 인간본연의 의문 등등에 대하여 그간 밤과 낮으로 짓눌려온 그 어떤 무거움을 일거에 속시원히 해소해 주었기 떄문이다. 마치 콜롬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그 순간이라고나 할까? 희망의 지푸라기를 찾고 싶은 스스로에게 산산조각은 한줄기 햇빛 즉 그 스스로가 축복이자 기적 그 자체였다.
최근 정호승 시인을 만났다. 우연히 후배 기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정호승 시인이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간청하여 선배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 싶었기 떄문이다.
비교적 나이가 적지 아니함에도 당당한 모습이 너무나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부드럽고 여유있는 목소리는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밝고 한없이 여유가 있는 모습 역시 시인 스스로에게 뿐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청취자나 시청자 모두에게 하나의 큰 축복이었다.
정호승 시인과의 그날 만찬에서의 대화는 잠시 다른 곳에 대하여 한눈을 팔 시간조차 전혀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박진감이 있었다. 3시간 이상의 대화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시인의 입담에 완전히 매료당하였다. 스스로의 경우는 그야말로 필부이었기 때문에 그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위대한 시인과의 만남 그 자체였다.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 정호승 시인의 이런 모습 등은 이 시대의 멋진 롤모델이라는 점을 명실상부하게 보여준다. 깊은 감동이 몰려왔다. 그러다 보니 만찬 대화에서 점차 너무 말이 많아지는 등 일반적으로 보기 어려운 여러 결례를 범하면서 스스로에 대하여 다시 한번 반성할 기회를 가지고자 다짐해 본다.
당일 저녁의 식당에서 정호승 시인은 그사 현장에서 직접 사인한 시가 있는 산문집을 건네주었다. 이를 직접 보면서 또 다시 놀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집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시가 바로 〈산산조각〉이었기 때문이다.
〈산산조각〉을 좋아하는 만큼 그 시의 탄생 배경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 하였다. 그가 산문으로 고백한 이야기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 룸비나였다. 이를 순방하고자 하는 여행에 가까스로 그는 느즈막하게 조인하였다. 평소에 예수와 부처간 태어난 곳을 죽기전헤 한번 들러 보고자 하는 마음을 평소에 먹어 왔었기 떄문이다.
그 여행중에 가마니에 무릎을 끊고 있는 할머니가 팔고 있는 흙으로 된 부처상을 구입했다. 즉 어렵게 팔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측은함 그리고 나름의 기념품을 가지고자 하는 생각 등 복합적인 동기 하에서 이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처 상이 흙으로 만든 것이어서 책상 위에 보존하고 있었는데 언제 부서질 지 모른다는 우려가 시인을 괴롭혔던 모양이다. 이와 같이 고민 만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부처님께서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시인을 불러 왜 이렇게 고민을 하느냐?고 질책어리게 물어보셨다고 한다.
이에 부처님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이 남지.. 그리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라면서 크게 꾸짖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이런 영감을 정리하여 일생 일대의 위대한 시를 만든 것이다. 시인은 이 순간을 " 순간 부처님의 그 귀한 말씀이 불화살처럼 내 가슴에 날아와 박혀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써 보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호승 시인 스그로도 "산산조각"이 자신의 일생 일대 최고의 작품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시인께서는
"내 인생을 위로하고 위안해 주는 단 한편의 시를 꼽으라면 바로 이 시 〈산산조각〉을 손꼽을 수 있다. 내가 쓴 시 중에서 내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단 한편의 시가 있다면 바로 이 〈산산조각〉이다. "
라고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또 이런 고백도 하였다.
"지금도 나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견디기 힘들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에 부딪치면 오늘도 산산조각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오늘도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워!"
시인이 위에서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이는 너무 공감되는 부분으로 다가왔다.
그의 시가 있는 산문집의 절정은 다음과 같은 문구이다.
"산사의 범종에 금이 가면 종을 쓸 때마다 깨어진 종소리가 난다. 그러나 종이 완전히 금이 가고 깨져 산산조각이 나면, , 그 파편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제 각기 맑은 종소리를 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구로 정호승 시인은 〈산산조각〉에 대한 산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깨진 종의 파편이므로 깨진 종소리가 나리라고 생각되지만 그게 아니다. 깨진 종의 파편 하나하나가 제각기 종의 역할을 한다."
"내 삶이 하나의 종이라면 그 종은 이미 산산조각났다. 그러나 나는 산산조각이 난 내 삶의 파편을 소중히 거둔다. 깨진 파편마다 맑은 종소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
그의 시 세계는 글로벌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간 정호승 시인은 13권의 시집, 즉 1천 편이상의 시를 쓰고 발표한 셈이다. 그리고 그의 시중 12편 이상은 노래로 작곡되어 현 시대의 최고 가수가 이를 발표하였다.
앞으로 그의 시를 전세계 배포하여 한국 시문학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려줄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국 시문학도 '노벨문학상' 등을 향해 당당히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