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불변의 진리는 회자정리 거자 필반이다. 만남은 곧 헤어짐을 의미하고 헤이짐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다만 이에 대하여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아니한 경우에 많은 감정적 소모가 심할 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도 이와 같은 진리에 대하여 제대로 알리고 이를 바라볼 수있도록 가르텨 주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스스로 습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가히 바람직한 영역이다. 가장 큰 이별인 죽음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별로 그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고는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좀더 발전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지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부정적이나 너무 긍정적으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감정소모가 많게 마련이다. 이를 좀더 밝게 바라볼수 있도록 스스로 수련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만남의 설레임에 감사하고 헤어짐에는 분명 또 다른 만남이 반드시 기약된다는 진리를 스스로 체득하여 실천할 필요가 있다. 삶을 너무 단기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좀더 여유를 가지고 거시적으로 본다면 만남과 헤어짐에 너무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이를 스스로 완전히 체득하여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그러면 마음이 더 없이 편안해 질 것이다.
과거는 과거이다. 지나치는 것은 그냥 지나치도록 하자. 미련을 버리고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면 좀더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어차피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인생을 생각하면 인생의 여정은 단두대로 가는 긴 행렬에 불과하다. 그와 같이 생각만 한다면 인생은 너무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단두대로 가는 긴 행렬에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도 다반사이다. 따라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모두에 대하여 일일이 감정의 기복이 생긴다면 인생은 더 없이 힘들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겸허하게 담당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문이 하나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 것이기 때문이다. 만남이후 헤이짐이 있으면 이는 또 다른 만남을 반드시 기약할 것이다. 물론 언제 올 것인지는 기약하기 어려울 지 모른다. 그럼에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실은 새로운 만남은 반드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새로운 만남이 과거의 만남보다 꼭 좋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 새로운 만남이 어떠하든지 간에 새로운 만남이 가지는 장점은 있을 것이다. 즉 설레이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어떠한 만남도 나름의 개별적인 장점이 있음에 분명하다. 기대만 그리 크게 하지 않는다면 달리 실망할 필요도 없다.
삶은 그 자체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오랜동안 하나의 만남을 길게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이에 못지 않게 제한된 삶에서 다양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다양한 새로운 만남은 그 과정자체만으로 설레이게 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에 충실하면서 진행과정에서의 결과에 스스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어차피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불필요하게 불편한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매순간에 그저 감사하고 경탄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인생은 그 자체가 축복이 될 것이다.
그 어떤 만남도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이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헤어짐 역시 새로운 만남을 위한 잠시 휴가기간으로 느끼자.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위한 준비를 하자. 또한 새로운 만남이 좀더 업그레이드되도록 스스로 이를 준비하고 노력하자. 어차피 결과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처음과 과정만이 의미가 있을 뿐이다. 결과가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처음과 그 과정만을 기억하고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