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어느 신부님께서 60세에 시골에 내려와 농막을 짓고 혼자 자급자족을 하는 삶을 묘사한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그간 평생을 신부로서 봉사를 하다가 말년에 아무런 퇴직금도 없이 그냥 시골에 내려와 그저 소박한 노년의 삶을 살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간 신부님으로서 봉사를 하게 됨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이 어쩌면 아니 세속적으로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그 생활에 충분히 만족해 하시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더 충격이었다.
한때 배우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배우는 배역에 따라 수많은 인생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이 하나의 연극무대이라면 다양한 배역을 맡아보는 것 역시 축복일 것이다.
최근에 드는 생각은 인생후반기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매력적이고 또한 의미가 있어 보였다. 너무 조용한 삶이 아니라 그간 해보지 못한 삶을 다니나믹하게 열정적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간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면 밑바닥의 인생도 1-2년 정도 경험해 보고 그간 터부시해온 분야의 삶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물론 너무 장기간이 아니라 1-2년 정도 그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피해온 삶이거나 아니면 누구나 너무나 부러워하는 삶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은 하나의 춤사위라면 다양한 춤을 춰보는 것이 어떨까? 당연히 환영이다. 향후 추호의 후회나 미련도 없도록 멋진 제2의 삶을 꿈꾸어 보자. 소위 세속적인 성공 등은 큰 의미가 없다. 스스로가 해보고 싶은 일을 미련없이 해보는 것이야 말로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가 세속적인 성공을 진실로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한번 시도해 볼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유한한 삶에서 그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아니할 뿐이다.
그대신에 정말 진실로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진지하게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즐기도록 하자. 달리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차피 한바탕의 춤사위를 벌이고 떠날 인생이라면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후반기의 삶에서는 모두가 용기있게 스스로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그리고는 그 삶을 위하여 한치의 주저함이 없이 멋지게 살아보자. 주위의 눈이나 시선에 조금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소리도 높히자. 하고 싶은 말들을 억누를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느끼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 역시 다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를 외부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 사람이 느끼는 것은 거의 다 같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두려움이 사탄이라고 한다. 스스로 사심을 버린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를 소리쳐 외쳐보자. 그리고 먼저 자신이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아보자. 그간 너무 타율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를 찾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스스로 찾았다면 이미 반은 성공인 셈이다. 내면의 자신에게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일이나 삶을 찾아야 한다. 찾았다면 그 일이나 삶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한 그 것을 완성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과정을 감사하면서 즐기면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각자에게 주어진 멋진 춤사위를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후회나 미련이 없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은 방향으로 나아가 보자. 그리고 그 과정에 그저 감사하고 그간 고생만 한 자신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는 시간이 된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