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우유니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는 투어를 신청하고 다음날 오전 6시 버스를 타고 국경도시로 가기로 하였다.오후에 정식으로 돈을 지급하고 예약을 하기로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여행사가 문을 열지 않았다. 거의 4시간 반을 기다렸다. 할 수없이 내일 아침에 가기로 한 버스티켓을 오늘 저녁 8시 발(發)로 변경했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것이 좋지 않는 면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면이 있는 모양이다. 여행사 앞에서 기다리는데 근처 공원에서 알리스라는 그리스 청년을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스페인어를 된 책을 읽으면서 스페인 사전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여 스페인어를 배우는지 물었는데, 이 대화를 계기로 금세 친해졌다. 신기한 것은 그가 어제 우유니에 도착하였고 오늘 저녁 9시 버스로 라 파즈로 간다고 했다. 왜 그렇게 급하게 가느냐고 물으니 이 도시에서는 달리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어제 1일 투어를 해서 우유니 사막을 다 보았다는 것이다. 지금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데 달리 할 것이 없어서 라파즈를 거쳐 쿠스코로 간다고 했다. 너무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남미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어보니 50일쯤 되었다고 했고,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주간을 보내고 또한 파타고니아에서 2주 이상을 보내고 칠레를 거쳐 지금 우유니에 왔다고 했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의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나도 상파울루, 이과수, 부에노스아이레스, 멘도사, 산티아고, 이리타, 리마, 쿠스코, 코파카바나, 라파즈, 그리고 이곳 우유니라고 했다. 언제 왔냐고 해서 2월 중순이라고 하니 놀라워 했다. 그 사이에 그렇게 많은 도시를 돌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낮에는 구경을 하고, 저녁 시간에 심야 버스로 이동했다고 하니 좋은 방법이라 공감했다.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느냐고 물으니 그리스 청년은 부에노스아이레스라고 했다. 당초 4~5일 정도 머무르기로 했는데 너무 좋아 2주 이상을 머물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남미에서 부에노스아이에스와 쿠스코가 가장 좋다고 말하였다.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좋았다.
전공은 기계공학을 했는데 다니던 회사가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사이에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 기간은 최장 6개월 정도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발길 닿은대로 여행한다고 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고 나아가 돈이라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한 것처럼 여행을 할 정도로만 있으면 된다고 했더니 깊이 공감을 하였다.
호스텔의 하룻밤 숙박료가 얼마인지를 물어보니 6~7달러라고 했다. 그런 곳도 괜찮느냐고 하자 운이 좋아서인지 좋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부키닷컴에서 예약을 하는 데 좋았다고 했다.
남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자 남미는 자신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유럽이 아름답고 좋지만 유럽과는 확연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유럽은 전기나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남미에서는 대부분의 시설이 미흡한데다 솔직히 말해 상상 이하다. 심지어 어떤 호스텔은 숙소의 특징의 하나로 ‘전기가 들어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유럽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지만, 역설적으로 화려한 문명 이전의 것에 더 끌린다는 것이다.
자신도 파트 타임으로 일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점을 공감하게 되어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여행사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리스 청년은 25분 거리에 있는 ‘기차 무덤’에 한번 가보겠다고 했다. 운동 겸 해서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어제 투어로 갔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제대로 못 봤다고 했다.
각자 일을 보고 2시간 후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내일 아침에서 오늘 저녁으로 바꾸었다. 문제는 내일 아침 버스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오늘 저녁버스에는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음식점을 찾았다. 간단히 커피나 마실까도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신라면이 먹고 싶어 주문하였다. 값은 35볼. 이곳에서 컴퓨터 작업을 한 후 알리스를 만나 잠시 이야기하다가 버스터미널로 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이제 햇살도 약해지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