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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 68 -산티아고에서 아리카까지 31시간의 긴 버스여행

글 | 김승열 기자 2020-02-27 /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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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가 길긴 긴 모양이다. 국토 중반부에 있는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국경도시이자 휴양지인 아리카(스페인어: Arica )까지 버스로 꼬박 30시간이 걸렸다. 놀라운 사실은 중간에 많은 도시를 경유했지만 거의 5분 전후로 승객이 내리고 타는 시간만 주어졌을 뿐이다.

 

브라질 경우처럼 중간에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잠시 쉬는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또 아르헨티나처럼 버스에서 별도로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없었다. 한마디로 가장 효율적인 버스운행이었다. 적어도 버스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운행정책인 셈이다. 그러나 버스 이용자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이용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 보였다.

 

작년 칠레에서 지하철 운임료 인상을 두고 대학생들의 시위 사건이 일어났다. 칠레 정부는 군을 동원해 진압하였다. 필자는 대학생들의 교통요금 인상 반대시위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엇지만 이번 30시간의 버스 여행을 하고 나서 보니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버스회사 등의 이익만을 위하고 이용자의 권익은 소홀하다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지하철 정책도 그런 맥락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관련하여 오전 10시에 행상이 버스에 올라와 간단한 샌드위치를 팔았고 그리고 밤 10시경에 또 행상이 올라와 간단한 빵과 음료수를 팔았을 뿐이다.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버스회사에서 식사를 제공하려니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큰 오산이었다. 이 버스는 산티아고에서 이기타까지 가는 승객은 거의 없고 중간중간에서 타고 내리는 거의 완행 버스인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분명 산티아고에서 아리카까지 30시간 걸리는 버스여행을 하는 승객입장에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를 그대로 묵인하는 정부의 버스 정책도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버스회사와 버스정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이해를 떠나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이러한 사회시스템 하에서 일반 서민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생애 처음으로 30시간의 버스 여행을 하면서 일반 서민의 인권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듯한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본 것 같다.

 

덕분에 간헐적 다이어트를 제대로 한 셈이다. 그렇지만 30시간의 버스 여행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일깨워 주었다.
먼저 칠레의 대자연에 대하여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사막의 다양한 모습, 그러니까 모래사막, 암반사막 그리고 중간 형태의 사막까지... 해변과 안데스 산맥의 다양한 모습. 그기에 맑은 칠레의 하늘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 남미 대륙의 광활한 대 자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도시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해변에 자리잡은 천막수준의 집들에서 고층 아파트, 이동식 버스터미널에서 간단한 픽업 포인트 수준의 정류장. 사설 해수욕장과 같은 시골의 작고 조용한 바닷가 등등.

 

스쳐 지나가는 승객들의 모습에서 인생여정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수 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그 과정에 아주 즐거운 표정과 대화에 열중하는 커플이 있는 반면에 얼굴 가득 찌든 삶을 그대로 드러낸 고생스럽고 힘들어 보이는 모습들...상당한 교양을 가지고 주위를 배려하는 사람에서부터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혼자 떠들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조용히 또는 시끄럽게 떠들다가 각자 목적지에 태무심하게 내리는 모습이 끊임없이 지속된다.

 

이들 모습이 각자의 삶의 여정과 거의 흡사하다. 아니 거이 같다고 보여진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다. 그리고 결국은 혼자일 것이다. 물론 같이 내리는 커플이나 동행은 있다. 그러나 그들고 궁극에는 각자의 삶과 길이 있을 뿐이다. 항상 모든 것을 같이할 수는 없는 것일 것이다.

 

이제 아리카까지 겨우 3시간 정도가 남았다. 밖은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다. 간혹 지나가는 차의 불빛만이 겨우 보일 정도다. 버스안 작은 등도 완전히 꺼졌다. 그간 속삭이고 떠들던 사람들도 이제 조용해 졌다. 모두 잠의 세상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너무나도 어두운 밤인 것을 보니 조만간 새벽이 올 모양이다. 그때에는 30시간의 버스 여행이 끝나는 시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또 다른 버스 여행의 시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기차나 비행기 여행이 기다릴 수도 있다. 여행은 끝이 없이 진행될 것이다. 끝이 있다면 그때는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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