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버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출발 5분전에 발권을 하여 겨우 탔다. 다행히 2층 좌석을 구입하였는데 승객의 인원이 적어서인지 1층을 배정해주었다. 자리는 평소 탄 버스보다는 넓고 편안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타는 버스는 브라질에서 탄 버스와 달랐다. 먼저 담요도 주고 나아가 식사도 버스내에서 제공하였다. 심지어 간단한 레드와인도 제공하였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다시 18시간의 버스기행이 시작된 것이다. 피곤하기도 하고 포도주도 한잔을 해서 인지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일어나니 아침 4시이다. 밖은 아르헨티나의 평원을 지나고 있었다. 좀 지나니 다시 비가 심하게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원없이 버스여행을 하는 셈이다. 그야말로 남미의 풍경은 버스안에서 마음껏 보는 셈이다.
어찌보면 인생도 지금 탄 버스기행과 같은 셈이다. 목표를 설정하여 그기에 도달하여 그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다른 차선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여 나아가기도 한다. 또한 막상 목표점에 와서는 실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롭고 지친 여정에 힘들어 하면서도 또 다른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두 번 다시 새로운 여정에 나아가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새로운 여정에 올라선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버스 창밖에 느껴지는 전경은 거의 큰 변화가 없는 것이 대다수이다. 간혹은 새롭고 이국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풍경이 지속되다가 보면 금방 익숙해져 또 다른 일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간혹은 실망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경이롭게 쳐다볼 때도 있다. 그렇다. 그저 머물러 있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인가 방향을 정하여 새로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삶인 셈이다. 물론 가만히 있는 것과 사실상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같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긴 버스기행에서 무의미함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자위와 위로의 말로서 던져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도와 도전은 지속만 된다면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나름대로의 의미와 지혜를 줄 것으로 확신한다. 행여 견해차가 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이제 날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다. 밤과 낮은 또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와닿는 시간이다.
좀더 밝음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대평원을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 지금 아주 밝지 않은 시산이지만 창밖의 전경은 끝없는 평원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이렇게 쭉 펼쳐진 평원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만으로도 축복을 받은 나라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 무엇인가 참여하고 발전할 잠재력이 있지 않을까? 비록 한국과는 너무 멀리 있는 곳이기는 하나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남미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임에는 분명히 보였다. 문제는 각론이다. 그러나 항상 직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간 경험에 의하여 많이 느꼈다. 남미의 문화 등에 비추어 한국문화가 융합된다면 무엇인가 답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을 위해 좀더 탐구해 보아야 겠다.
부에노스 아리레스가 갑자기 더 궁금해 진다. 그리고 그기서 무엇인가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