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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중동아시아 일기 19 - 프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위대한 역사와 해후하다

글 | 김승열 기자 2020-01-27 /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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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기행의 종착점은 카이로였다. 고대 인류역사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문명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다소 논란이 있지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중앙아시아, 아시아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이집트 문명의 가장 진수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직접 보기 위하여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동행된 현지 여행투어를 시작했다. 차와 기사 및 가이드 비용으로 50달러. 그리고 현지에서 낙타와 말을 타고 12km 정도 되는 역사적 현장으로 돌아보는데 입장료 등을 포함하여 100달러를 지불했다.

 

가이드는 영어와 이태리어로 통역하는 가이드였는데 밝고 적극적이었다. 먼저 낙타를 타는 색다른 도전 역시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별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낙타를 타고 가니 수천년 전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피라미드는 큰 것이 3개이고 작은 것이 6개였다. 큰 것은 왕의 피라미드였고 작은 피라미드는 왕비나 왕의 어머니 등의 피라미드였다.

 

일단 그 크기에 놀랐다. 높이가 수백 m가 되는 데 엄청난 돌을 어떻게 올렸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초기의 피라미드는 크게 쌓는 형식이었으나 점차 발전하여 수많은 암석으로 나누어져 쌓았다고 한다. 이 돌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가지고 와서 나일강에서 부터 이를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 작업에 동원된 노예 등의 희생이 엄청날 것으로 보였다.

 

피라미드 내부에도 들어가 보았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가운데에 미이라와 보석 등을 놓아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대다수가 도굴되어 텅비어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왕의 어머니의 피라미드에서는 보석이 발견되어 이 보석들이 이집트 박물관에 보관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실제로 피라미드 안에 들어갈 때는 좀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혹시 무너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집트 정부에서는 가이드가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피라미드 안에서 설명 등을 하게 되면 울림작용으로 피라미드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얼굴은 왕의 얼굴이고 몸은 사자의 모습이다. 당시 왕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어서 마치 여자의 모습같이 보이나 왕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당시에 이 정도의 크기의 조각품을 어떻게 완성하였는지가 신비롭고 그 기술이 궁금하였다.

 

또 다른 세상이다. 이집트 문명의 위대함을 제대로 느끼면서 그저 놀라고 그 위대한 문화유산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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