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정권에서 ‘얼리버드(early bird)’ 출근자에게 고속도로 통행료를 최대 50%를 인하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출근자)’로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죠.
서울의 집값이 워낙 비싸 지방 변두리에 살며, 별이 지지 않은 꼭두새벽, 혹은 깜깜한 밤에 차를 몰고 대도시로 오가는 샐러리맨의 애환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입니다. 시인 김기택의 <사무원>이란 시가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지요.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장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 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생략)’
이 시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사무원>의 시적 화자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많이 먹는다’는 속담을 비웃고 있지요. 요즘 회사원 사이에서는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도 있습니다. 주말과 휴일에도 금요일처럼 일한다는 뜻이지요.
‘얼리버드 증후군’은 그런 샐러리맨에게 나타나는 질병을 뜻합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피로가 누적돼 눈이 충혈 되고 팔다리가 뻐근하면서 온종일 피로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샐러리맨의 비애를 그린 증후군이 이외에도 제법 많습니다.
‘조간(朝刊) 증후군’은 아침에 일어나도 의욕이 없고 몸이 무거우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조간신문 보기가 겁이 나 이불 밑으로만 파고드는 답답한 증세를 나타납니다.
‘신(新)샌드위치 증후군’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샌드위치처럼 꼼짝달싹 못하는 직장인의 심리적 위축상태를 뜻하지요.
‘슈퍼직장인 증후군’은 ‘워크 홀릭’이나 완벽주의자와 달리,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탓에 일에 매달리는 직장인을 일컫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에 자부심이 없고 열심히 일하는 척만 합니다.
‘사춘기 증후군’은 직장 초년생들이 일의 적성, 조직문화를 느끼면서 겪게 되는 당혹감, 또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스트레스를 받는 증상을 뜻합니다. 심한 사회 초년생들은 소화불량, 탈모, 두통 등 신체적 증상과 함께 우울증, 무기력증, 가슴 떨림 현상이 나타나지요.
기왕에 ‘샐러리맨의 비애’를 이야기했으니 사회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해 볼까요? 그것도 임금노동자의 ‘착취’에 대해서 말입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이유는 임금노동을 일종의 ‘착취’로 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노동력의 대가(임금)를 제대로 못 받고, 심지어 노동에 드는 비용과 상품을 팔 때 받는 가격에서 생기는 ‘차액’(이것을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잉여가치’라고 부릅니다)을 자본가가 착복한다고 보았습니다.
자본주의는 소수 자본가만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해 부자(산업자본가계급)가 되고 다수(산업노동자계급)는 자신의 노동력을, 싼 값에 판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경제 질서에 정의가 있을 수 없고 ‘상명하복(上命下服)식 경제’만이 남지요. 결국 노동자는 평생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한 것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인클로저 운동’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인클로저(enclosure)라는 말은 토지에 울타리를 쳐서 막는다는 뜻으로, 영주가 공동체의 관습에 따라 공유지(농토)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쫓아냈지요. 농민들은 부랑하다 도시로 몰려갔지만 일자리가 없어 저임금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한 노동자는 빈곤, 실업, 공황에 빠져 헤어날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예언했습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사유폐지와 국민경제의 계획적 조직적 관리에 의해서만 해결된다고 주장했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이 노동자계급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가 성공한 이유는 자유와 정의, 윤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힘을 합쳐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서로 베풀며 기회를 제공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적어도 완전히는 아니어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요.
게다가 스탈린식 현실 사회주의나 개방이전의 중국 공산당의 모습처럼 강제적 집산(集散)화와 무자비한 억압, 비밀경찰에 의한 감시와 인권탄압 등 공산주의의 독재자들이 주민들의 자유를 철저히 묵살했지요. 결국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받는다’는 사회주의 경제는 얼마 못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또한 사회주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샐러리맨 중에서 자신이 몸담던 조직에서 CEO가 되기란 매우 어렵지만, 자본주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의 비율을 늘어나게 만들었지요.
교육을 받게 되면 높은 기술을 가지게 돼 같은 직종 내에서도 지위와 소득이 상승, 계층상승이 가능해져 사회평등에 기여하게 했지요.
‘인간자본론’을 주장한 경제학자 슐츠(Theodore Schultz)는 “교육은 인간자본에의 투자이며, 인간이 교육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갖추게 될 때 생산성이 증가하여 인간의 경제적 가치가 증가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샐러리맨의 신화’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성공신화를 쓴 자본주의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지요. 대통령으로서의 실정(失政)을 일단 덮어두고, 그는 학생운동 전력으로 간신히 현대건설에 입사했지만 12년만인 35세 나이로 사장이 됐고 1988년 회장이 되었습니다. 성실과 끈기로 인생을 ‘로또’로 만들었지요.
그리고 그는 ‘새벽 5시’ 기상으로 유명한 얼리버드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5시엔 일어나 일을 챙긴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는 새벽 3시에 기상한다고 합니다.
다른 얘기지만, 얼리버드는 미국 골프장에서 아침 일찍 치는 라운딩을 의미하는 말로 쓰입니다. 또 1965년 대서양 상공에 쏘아 올린 미국이 만든 세계최초의 상업용 통신위성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성이름을 왜 ‘얼리버드’로 지었는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위성은 지구 정지궤도를 돌고 있으니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속담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얼리버드보다 ‘높이 나는 새(highest bird)’가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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