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판결문은 의외로 엉성하다. 일반인은 예상하기 어렵겠지만, 실형선고 판결문도 간단하다. 증거항목을 보면 더 경악한다.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 진술' 또는 '증인 000의 일부 진술'이 고작이다.
거의 메모 이하 수준이다. 왜 유죄를 판단하게 되었는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만이 있을 뿐이다. 판사의 고뇌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알아서 안 되는 것일까.이는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 청구권의 중대한 위반이다. 방어권 자체를 행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사재판에서 각 당사자들의 주장과 입증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판단하고 그 배척이유를 기재하는 것과 너무 차이가 난다.
형사사건에서 그런데 왜 이런 형사판결문 기재관행이 생겼을까? 오히려 조선시대의 판결문은 상세하게 증거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마도 일제잔재로 보여진다. 즉 독립투사 등에 대한 유죄판결시에 다툼을 위하여 메모수준의 증거를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검사를 준(準) 사법기관으로 보아 검사의 조사내용을 재판 절차로 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미 검사단계를 거쳐 상당 부분 입증이 된 것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이고 재판절차는 검사의 조서 기재에 추가되는 후속 절차로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현재의 형사판결문 기재 관행을 달리 이해하거나 해석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잘못된 일제 잔재로 보이는 형사판결문 기재 관행을 조속히 개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