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칸 아메리칸과 양키에 관하여] 버락 오바마는 첫 흑인 미국 대통령입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구호는 ‘Yes, we can’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이에요. 그래서 꿈을 이룬 '아프리칸 아메리칸(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 부르지요.
오바마는 1961년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유학생 아버지와 스무 살도 안 된 미국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지요. 오바마가 두 살 때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진학한 아버지는 웬일인지 어머니와 헤어졌지요.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과 재혼하면서 오바마는 여섯 살부터 4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답니다. 오바마는 또래 친구와 피부색이 달랐기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신의 꿈을 이렇게 밝혔지요.
“나는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되어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2004년 7월 27일, 오바마는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의 눈에 띄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공식 선출하는 전당대회의 기조 연설자로 뽑혔지요. 당시 그는 이 연설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져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지요.
“리버럴 아메리카도 없고, 보수 아메리카도 없습니다. 아메리카 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 아메리카도 없고 백인 아메리카도 없고 라틴 아메리카도 없고 아시안 아메리카도 없습니다. 아메리카 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우리는 냉소의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아니면 희망의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그리고 4년 뒤에 바로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한 그날(2008년 8월 28일)은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역사적 연설을 한 지 꼭 45년이 되는 날이었지요. 《워싱턴포스트》는 ‘킹의 꿈을 이룰 새로운 날이 밝았다’고 표현했답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산물입니다. 당시는 ‘블랙파워’(1965년 암살된 맬컴 엑스의 영향을 받아 제창된 미국 흑인운동의 슬로건) 운동의 여파로 흑인 무장폭동이 잦았다고 해요. 1967년 4월 존슨 대통령이 디트로이트에 정예 낙하산 부대원 4700명을 투입했을 정도입니다. 당시 시장이었던 제롬 캐비노는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 같다”고 했지요.
루터 킹 목사
이듬해인 1968년 루터 킹 목사의 암살사건이 일어나 흑백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미국사회에서 ‘블랙’, ‘니그로’ 같은 비칭(卑稱)은 사라지고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는 공식호칭이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해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삶은 소설 《뿌리》에서 그 역사를 더듬을 수 있습니다. 노예선에 실려 미국 버지니아주로 끌려와 노예로 팔려간 ‘쿤타 킨테’의 삶은 전형적인 아프리칸 아메리칸입니다. 백인 주인을 피해 죽음을 무릅쓰고 네 번씩이나 도망치다 끝내 도끼로 발등을 찍히는 고통을 당했지요. 하지만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찾겠다는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고, 그런 희망이 자손들한테로 이어져 오늘날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우뚝 섰습니다.
반면, 양키(Yankee)는 미국인 일반을 뜻하는 속칭이죠. 대체적으로 백인을 의미해요. 한국 같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양키가 정치적인 뜻이 강해서 ‘반미(反美)정서를 함축합니다. 반미시위를 할 때마다 “양키 고 홈” 구호가 등장하잖아요.
또 영어를 쓰는 미국 이외 국가인 영국, 호주, 캐나다 아일랜드에서도 양키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미국인을 농(弄)조로 부르는 구어체이지요. 줄여서 양크(Yank)라고도 해요.
그러나 양키는 훨씬 복잡하고 역사적인 뜻이 담겨있어요. ‘아프리카 아메리칸’처럼 이주민의 역사가 짙게 배여 있고 지역차별의 의미도 있답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양키는 네덜란드인의 이름인 양(Jan)과 키스)Kees에서 어원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양’은 네덜란드인으로 이뤄진 뉴욕(당시의 뉴 암스테르담)의 정착민을 칭한다고 해요. 따라서 네덜란드나 영국에서 온 거주자들을 조롱하는 비속어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커요. 미국 프로야구 구단 중에서 뉴욕에 연고를 둔 ‘뉴욕 양키즈’가 떠오르네요.
양키는 ‘빌어먹을 양키(damned Yankee)’라는 말과 곧잘 어울리는데 미국 남북전쟁(1861~65) 당시 남군이 노예해방을 천명했던 북군을 깔보기 위해 유행시켰다고 해요. ‘양키는 북부사람, 댐양키(Damnyankee)는 북부사람 중 남부로 이주한 사람을 경멸하는 말’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양키는 비영어권 국가에서 정치적인 반미 상징, 미국 외 영어권 국가에서는 미국인을 경멸하는 말, 미국 내에서는 북부사람을 뜻합니다. 한 단어를 두고도 이렇게 복잡하게 쓰이고 있네요.
유색인종의 투표성향과 관련된 키워드가 여럿 있지요. 그중에 하나가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입니다. 선거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높게 나왔던 유색 인종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낮은 득표율을 얻는 ‘여론조사 왜곡 현상’을 말합니다. 1982년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흑인인 톰 브래들리(당시 LA시장)는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 백인의 공화당 후보 조지 듀크미지언(당시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을 앞섰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브래들리가 패했습니다.
1983년 시카고 시장선거와 1989년 뉴욕 시장 선거 등 이른바 흑백 대결이 펼쳐진 여러 선거에서도 브래들리 효과가 입증이 됐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선거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예로 듭니다. 첫째는 백인 유권자가 흑인 조사원에게 백인을 지지한다고 밝히면 불필요하게 자신의 인종적 편견을 드러낼 수가 있지요. 그래서 여론조사에서는 거꾸로 답하고, 실제 투표장에서는 백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겁니다. 둘째는 당선이 유력한 흑인 후보의 여론조사에 불만을 품은 백인 유권자가 선거 당일 백인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브래들리 효과는 이후 많이 희석됐습니다. 1989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흑인후보 더글러스 와일더(Douglas Wilder)는 선거날 출구조사에서 경쟁자인 공화당의 미셀 콜먼(Marshall Coleman)을 10% 앞섰으나, 개표결과 불과 0.3%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지요. 이를 계기로 브래들리 효과는 사라지고 ‘와일더 효과(Wilder effect)’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로는 인종에 따른 투표차이가 완화돼 ‘브래들리 효과’와 같은 왜곡 투표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흑인 오바마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백인 존 매케인 후보를 줄곧 앞섰으며 실제 선거에서도 매케인을 제치고 당선됐어요.
>>더 생각하기
오랫동안 지속돼 온 흑백의 차별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금언(金言)을 찾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①용서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
②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당장 사형수 한 명을 처형해야 한다(칸트의 ‘정의론’)
③기억하되 용서하라
④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⑤피해자에게 금전적 배상을 하지 못한 가해자는 동일한 손해를 입어야 한다(BC 5세기 로마의 법률)
⑥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이다
⑦그대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⑧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누구든 그것을 잊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란 없다. 사랑하는 동안에만 용서할 수 있다.(톨스토이)
⑨용서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잊는 일은 더욱 좋은 일이다.(브라우닝)
⑩남에게는 많은 것을 용서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무엇 하나 용서하지 마라.(시로스)
>>더 읽어보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중 일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조지아 주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행제 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 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내 꿈이 실현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아름다운 자유의 땅, 나는 조국을 노래 부르네. 나의 선조들이 묻힌 땅,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선조들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땅,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하라!”
주민의 모든 자녀들이 이 구절을 새로운 의미를 암송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우리의 꿈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핵심 키워드
블랙파워 : 1960년대 미국 흑인들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 일어난 정치운동.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자립과 존엄의 증진이 목표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이 인정과 진보, 권익, 발전을 열망하는 운동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북아메리카 남쪽에 흑인 독립 국가를 세우자는 요구부터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범아프리카주의 같은 운동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의 블랙파워 운동은 아주 광범위하다.
아프리칸 아메리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