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

오구마 히데오의 〈누나에게(姉へ)〉

“안심하십시오. 남동생은 야무지게 되었습니다”

글 | 김승열 기자 2019-12-12 /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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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에게
  오구마 히데오(권택명 역)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 높다랗게 바람에 떠도는 곳에?,
  우리 누나는 불행한 남동생의 일을 생각하고 있겠지요
  술에 취해 날뛰던
  절제하지 못하던 남동생은
  지금 꼿꼿하게 몸이 야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슬프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용감하게 합니다
  내가 몇 번이나 도시로 뛰쳐나갔다가
  몇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누님, 당신이 밤새 울면서
  충고를 해준 것이
  똑똑히 눈앞에 떠오릅니다,
  ? 얘는 어째서
  그토록 도쿄(東京)로 나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남동생은 조용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란, 나에게 지금은
  손 안의 한줌처럼 작은 것입니다.
  나는 이걸 지그시 강하게,
  이 녀석을 움켜쥡니다,
  나는 쾌감을 느낍니다,
  ?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할 만큼, 지금은 대담한 말을
  뱉어낼 수가 있습니다,
  노동을 위해 움켜쥔 손을
  나는 가만히 펼쳐봅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증오의 땀을 흘리고 있을 뿐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도쿄에 정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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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항시인 오구마 히데오

姉へ
  小態秀雄
 

  アカシヤの花の勾いの,
  ブンと高く風にただようところに?,
  私の姉は不幸な弟のことを考えているでしょう
  ?ってあばれた
  ふしだらであった弟は
  いまピンと?がしまっているのです.
  そして弟は考えているのです,
  苦?というものは
  どんなに人間を?くするものであるかを.
  私は悲しむということを忘れました,
  そのことこそ
  私をいちばん悲しませ,
  そのことこそ、私をいちばん勇?づけます
  私が何べんも都?へとびだして
  何べんも故?へ舞い戾ったとき
  姉さん、あなたが夜どおし泣いて
  意見をしてくれたことを
  はっきりと目に浮びます,
  ? この子はどうして
  そんなに東京にでて行きたいのだろう,
  弟はだまって答えませんでした,
  運命とは、私にとって今では.
  手の中の一握りのように小さなものです.
  私はこれをじっと?く,
  こいつをにぎりしめます,
  私は快感を?えます,
  ? 私は?うためにではなく
  生活のために生きているのです.
  というほどに、今では大?な言葉を
  吐くことができます
  ??のために握りしめられた手を
  私はそっと開いてみます.
  そこには何物もありません.
  ただ憎しみの汗をかいているだけです,
  御安心下さい,
  私は東京に落ちつき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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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마 히데오는 1901년생 시인이다. 한국의 시인 중에 1901년생은 〈빼앗긴 들에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이 있다. 오구마는 1910년 한일병탄에 아파한 몇 안 되는 일본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시 〈장장추야(長長秋夜·깊고 깊은 가을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검게 더렵혀진 흰옷을 방망이로 두들긴다/ 두들기는 손길도 울고 있다/ 두들겨 맞는 들도 울고 있다/ 조선의 모든 것이 울고 있다〉(번역 권택명)
 
  당시 일본 시인 중에 ‘조선의 모든 것이 울고 있다’고 쓴 이가 몇이나 될까. 오구마는 식민지 한반도 민중을 피지배자의 아픔으로 묘사했다. 〈누나에게〉는 누나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의 시로 철없던 남동생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대도시로 상경해 온갖 고생을 한 시적 화자(나)에게 누나가 실제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와 소설 속에서 ‘누이(누나)’는 비유와 은유로 해석되는 문학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현대문학에서 누이 이미지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손위 누나를 남동생이 각별히 생각하며 쓴 작품이 제법 많다. 남동생에게 누나는 어머니와 거의 동격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한다. ‘엄마와 누나(누이)’가 차지하는 내 마음의 자리에 ‘아빠와 남동생’의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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