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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의 협력으로 네덜란드 병을 고치다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work sharing, job sharing

글 | 김승열 기자 2019-12-06 /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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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세나 협약에 관하여] 바세나 협약은 첨예한 사회적 쟁점의 해결과정에 대한 중요한 선언을 담고 있어요. 이 협약을 이해하려면 네덜란드 병()’을 알아야 하고,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은 정부와 기업, 노동자의 노사정(勞使政) 협력도 이해해야 합니다.

네덜란드는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어요. 급기야 사회복지 혜택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동 기피자가 늘면서 실업률이 8~9%대로 치솟고 경제는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에 시달렸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네덜란드를 보며 혼란스러웠어요. 네덜란드 하면 바다를 메워 간척지를 이룬 저력의 나라 아닙니까. 13세기 이래 전 국토의 20% 이상을 간척했던 전설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지요. 게다가 1960년대 어마어마한 천연가스가 발견돼 자원 부국이 됐어요.

그런 네덜란드가 경제난에 빠져 시들시들해져 버리게 됐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네덜란드의 경제구조를 연구하면서, 나라의 자원이 산업 발전을 견인(牽引)하지만 때론 그 자원에 기대어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 재앙이 될 수 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네덜란드가 천연가스를 발견한 뒤 외형적인 성장을 이뤘으나 내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어요. 사회복지비로 펑펑 돈을 쓰면서 노동자들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결국 정부재정은 고갈되고 실업률은 급증, 네덜란드 병을 앓게 된 것이죠.

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자원의 보고(寶庫)가 기회냐, 재앙이냐를 두고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재앙론을 대표하는 조지 소로스는 1960년대에서 90년대의 30년 동안 자원 빈국이 오히려 자원 부국보다 23배 정도 빠른 경제성장률을 보였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한국과 타이완,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 국가의 경우 그야말로 자원 빈국이죠. 가진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맨주먹 하나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갔어요.

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기름값을 올리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은 중동 산유국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부패와 인권무시, 정치경제의 후진적 시스템이 중동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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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막대한 석유수입으로 안정화 기금을 만들고 국가 인프라와 교육 투자에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경제난으로 다른 나라들이 1980년대 이후 국가의 복지예산을 줄일 때도 오히려 이를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노르웨이는 세계에서도 가장 풍요롭고 복지혜택이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세나 협약의 유래를 다시 더듬어 봐요. 천연자원 덕분에 부국이 된 네덜란드는 과도한 사회보장 덕분에 노동기피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어요. 오일쇼크 이후 1981~8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실업자가 매달 1만명씩 증가해 실업률이 12%로 올라갔고, 1981~83년 사이에 무료 30만 명이 해고되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덩달아 사회보장 지출은 급증했습니다. 나라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지요.

네덜란드 노사정(勞使政, 근로자와 사용자 및 정부)1982년 헤이그 북쪽 바세나에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리고 임금을 깎되 근로자를 해고 안 한다는 바세나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또 노조는 임금인상 억제를 받아들였고, 회사는 노동시간을 5% 줄여 고용을 늘리기로 했어요. 여기에 정부도 가세했어요. 네덜란드 정부는 임금인상을 1% 억제하면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노동시간을 2.5% 줄이면 24만명을 추가 고용할 수 있다고 노사 양측을 설득했지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네덜란드는 80년대 후반부터 다시 4~9%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실업률도 낮아졌지요. 사회협약을 통해 실업률을 줄이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회복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 손꼽히게 됐어요.

네덜란드 특유의 노사화합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경제가 몇 해 전 다시 어려워지자 노사 대표가 헤이그에서 모였습니다. 노사측은 물가상승률 예상치를 초과하는 임금인상을 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맺었어요. 협약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기업들은 가능한 이 기준에 맞춰 단체협약을 맺도록 장려됐지요.

바세나 협약은 일종의 워크셰어링(work sharing, 일자리 나누기)입니다. 워크셰어링은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을 막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나눠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고용 방식을 말합니다. 바로 네덜란드의 바세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지요.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일자리를 더 늘리는 잡셰어링(Job sharing)과도 의미가 통합니다.

일본 군마현(群馬縣)의 대표적 공업도시인 오타시에는 내로라하는 제조업체들이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후지(富士)중공업의 경차 생산공장이 유명합니다. 몇 해 전 이 회사가 경기악화에 따른 감산으로 비정규직 사원을 줄이자, 지방정부인 오타시가 임시직원 채용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감원한 만큼 정부가 대신 일자리를 책임진다는 뜻이죠.

비슷한 시기, 독일은 산업별 노사협약을 통해 워크셰어링 제도를 도입했어요. 폭스바겐은 감산이 불가피해지자 직원해고 보다는 근로 시간을 단축(37시간35시간)하는 방법으로 실업자 양산을 막았지요.

독일 정부는 2001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파트타임 노동자를 확대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란 평생고용의 경직된 일자리 대신 쉽게 취업하고 쉽게 그만둘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야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합니다. 구조조정이 손쉬워져야 경제흐름의 변화에 발맞춰 점 더 역동적으로 기업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연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근로자의 고용이 불안정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죠.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까요. 회사가 잘 돌아갈 때 많은 사람을 뽑았다가 조금 주춤하면 가차없이 쫓아버리고 맙니다. 파리 목숨이죠. 사실, 노동 유연화와 노동 기본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입니다.

독일의 경우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 지급을 분명히 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노동자 처우 악화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유럽 각국은 이 같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실업 인구를 줄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실적 악화로 감원을 단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항력의 현실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실업자가 느끼는 고통, 나아가 절망과 자포자기의 심정도 외면할 수는 없지요.

경제위기에 따른 대량 실업을 막기 위해서는 바세나 협약과 워크셰어링 같은 노사정의 인내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경제위기에 따른 대량 실업은 우선 기업 자신이,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가, 나아가 같은 노동자끼리 고통을 분담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핵심 키워드

바세나 협약

오일쇼크

워크 셰어링

잡 셰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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