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에 관하여] 리무진 리버럴은 미국 사회에서 ‘부유한 좌파’를 의미합니다. 말은 분배, 평등 같은 가치를 외치면서 고급차 타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부를 나누지 않는 위선을 비꼬는 뜻이 강합니다
미국에선 ‘좌파들의 말은 따라하지 말고, 하는 짓을 따라하라’는 책도 나왔다고 해요. 프랑스에서는 ‘고슈 캐비아(캐비아 좌파)’라고 부릅니다. 캐비아는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식품입니다. 세계적 진미로 꼽히죠. 식도락(食道樂)이 많은 프랑스에서는 부의 척도가 음식인 모양입니다.
비슷한 말이 대한민국의 ‘강남 좌파’입니다. 서울의 강남구는 땅값이 아주 비싸고 고소득 지식층이 많이 살며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입니다. 그런데 강남에 살면서 좌파적 발언을 한다 하여 ‘강남 좌파’라 부릅니다. 다만, 가난한 좌파였다가 나중 부자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자가 좌파가 되어 ‘취향좌파’의 모습을 띄는 것인지는 좀 더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슷한 말이 대한민국의 ‘강남 좌파’입니다. 서울의 강남구는 땅값이 아주 비싸고 고소득 지식층이 많이 살며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입니다. 그런데 강남에 살면서 좌파적 발언을 한다 하여 ‘강남 좌파’라 부릅니다. 다만, 가난한 좌파였다가 나중 부자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자가 좌파가 되어 ‘취향좌파’의 모습을 띄는 것인지는 좀 더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남 좌파들의 자기고백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몇 해 전 글입니다.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어도 스스로 강남 서민이라 생각합니다. 국산 고급차를 타는 사람은 외제차를 타지 않기 때문에 강남 좌파라 불리기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구독하려면 눈치가 보입니다. 경비원들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부자였던 체 게바라처럼 순수한 좌파가 강남에서 나오길 기대합니다.”
“종부세 때문에 일 년에 4번 가던 해외여행을 2번으로 줄일 수도 있고 벤츠 S클래스 사려다가 VW페이톤으로 눈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그런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분당과 과천에 집이 한 채씩 있지만 합쳐도 강남 평균 집값에 못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연봉 7000~8000만 원, 아내가 5000만 원이니 억대는 넘는군요. 이것저것 감안하면 강남 좌파의 제일 아랫단계인 듯….”
“저는 ‘영혼 없는’ 공무원 좌파입니다. 실천은 내 팔자가 아니라 생각하고 뒤에서 궁시렁 대는 공무원 좌파지요.”
강남 좌파 현상을 두고 한 사회학자는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와 같은 본격적인 취향 좌파가 우리사회에 등장하고 있다”고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강남 좌파의 특징은 자본주의에 아주 비판적이란 것입니다. 스스로 자본주의의 단맛을 잘 알고 몸으로 느끼고 살지만, 정신은 분배?인권?평등 같은 가치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식 자본주의 복지모델인 유럽식 복지국가를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지요.
역사적으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강남 좌파는 ‘프티부르주아지(petit bourgeoisie)’와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간의 중간계급에 속하고 피지배계급이면서 부르주아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계층이 바로 프티부르주아지입니다. 소시민계급 또는 소부르주아로 번역되기도 하지요. 이들은 스스로를 장래의 지배자 도는 권력자의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프티부르’라는 말이 지니는 특별한 의미는 그들의 현실적인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지위에 대한 기대치 간에 괴리가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지배계급이 됐지만,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의 지위에 못 올라갔거나 몰락한 이들, 즉 ‘프티부르’가 자신을 노동자 계급과 동일시하는 것을 싫어해 부르주아적 의식을 고수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들은 부르주아적 생활태도나 그 분위기에 접근하려고 하거나 모방에 만족하려 합니다. 실상은 봉급생활자에 지나지 않지만, 의식적으로는 지주인 척하는 ‘위선’과 ‘허위의식’을 드러냈지요.
그런 면에서 강남 좌파는 ‘프티부르’와 묘하게 대비됩니다. 강남좌파는 소득 면으로 볼 때 부르주아지, 혹은 ‘프티부르’에 속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의식에 다가서려 합니다. 강남 좌파는 머리를 노동계급에, ‘프티부르’는 머리를 귀족계급에 두고 있으니까요.
행여나 일부 강남 주민들의 ‘좌향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담고 있을까요? 그러나 세상의 ‘소금’이 될지 ‘설탕’이 될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뜻의 노블레스(Noblesse)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Oblige)가 합해진 말이죠.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Gaston Pierre Marc, 1764~1830)가 처음 사용했어요.
로마가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16년간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렀을 때, 최고지도자인 콘술(집정관)만 13명 전사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 2000년 역사를 지탱해 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했지요.
몇 년 전 일입니다. 스웨덴의 한 부동산 업자가 자동차를 몰고 핀란드 국경으로 막 넘어갔을 때 갑자기 속도 측정기에서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시속 30km 이하로 제한 된 도로를 67km로 달렸어요. 얼마 후 고지서가 날아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벌금이 무려 2만500유로(약 2870만원)였어요.
너무나 큰 액수여서 핀란드 법원에 항의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핀란드의 교통위반 벌금은 위반자의 연봉에 따라 책정한다.>
유럽에서는 핀란드식 벌금 체계를 ‘노블레스 오블리주법’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강남 좌파’로 인정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짧은 재임시절,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산정하는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검찰 개혁안으로 제안하기도 했었죠.
>>이야기 하나 더... 사과나무 사나이, 조니 애플시드
존 채프먼(John Chapman, 1774~1844, 그림 인물)은 ‘사과나무의 사나이’ 혹은 ‘조니 애플시드’라는 애칭으로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채프먼은 미국 중서부 지역에 수많은 사과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오늘날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건, 일리노이 주의 사과나무는 거의가 그가 싹틔우고 기른 묘목에서 파생됐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리오민스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유능한 목수였고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되던 해에 사망했다. 뉴잉글랜드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채프먼은 청년이 된 18살 때, 당시로서는 가장 먼 변방이었던 오하이오 강을 건너 서부로 갔다.
채프먼은 남보다 한발 앞서서 변방에 당도해 양지바른 터를 골라 개간을 하고 그곳에 사과 씨를 뿌렸다. 사과 씨가 싹이 터서 적당한 크기의 묘목으로 성장할 무렵이면 다른 이주자들이 뒤따라와 사과 묘원 주위에 정착촌을 이루곤 했다. 그는 이주자들에게 집 주변에 사과나무를 심으라고 권하면서 사과 묘목을 나눠주었다. 형편이 어려운 이주자에게는 공짜로 나눠주었다.
정착촌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그는 사과 묘원을 팔고, 다시 더 먼 변방으로 가서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사과 묘원을 일구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조성한 사과 묘원이 수 백 개에 이르고 그의 손을 거쳐간 사과나무가 100만 그루는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중서부의 많은 마을과 도시가 그가 일군 사과 묘원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하니, 터를 보는 그의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채프먼이 접목의 방식이 아니라 씨를 직접 뿌려 묘목을 얻고자 한 것도 그것이 과육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당대의 식물학 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치밀한 과학적 영농가였다.
채프먼은 묘원에 파종할 사과 씨를 동부의 사과즙 공장에서 얻었다. 좋은 씨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공장을 순회했다. 그렇게 얻은 씨를 심기 위해 먼 변방으로 향했다. 그는 걷기를 좋아했다. 구두가 귀한 시절이라 대개는 맨발로 걸었다.
채프먼의 일생은 정주를 거부하는 노상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목적 없는 떠돌이의 삶이 아니라 삶의 지평을 부단히 넓히려는 구도의 삶이었다.
그의 무덤은 인디애나 북쪽에 위치한 폿웨인 시에 있다. 묘석에는 <조니 애플시드/존 채프만/그는 타인을 위해 살았다>라고 석 줄의 비명과 펼쳐진 성경책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타인을 위해 살았다’, 이 말처럼 감동적인 말이 또 있을까.
(‘사과나무 낙원의 꿈’, 《녹색평론》, 2005년 9?10월 합본호 참조)
>>핵심 키워드
리무진 리버럴
프티부르주아지
룸펜프롤레타리아트 :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떠돌이 빈민층. 오랜 기간에 걸친 실업 질병 등으로 상대적인 과잉인구에서도 탈락된 층이다. 근로자로서의 규율도, 긍지도 잃고 있으므로 이미 프롤레타리아의 한 무리라고 할 수 없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치가는 자주 그들에게 돈과 술을 제공하고 반동적 운동에 동원해 사회의 소란상태를 유발시키고 그 기회를 이용한다. 이 때에 그들은 역사에 등장하여 독재체제 형성의 한 요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