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재판청구권 보호는 헌법 상의 권리이다. 특히 형사사건에서 인권 보장 내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은 중요한 기본권이다. 그런데 최근 형사사건에서 법정에서의 제대로 된 재판청구권의 보장 관련하여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판사대비 지나친 형사사건의 부담이 문제이다. 특히 대법원 판사 1인당 연간 3,000건 이상의 사건을 부담한다는 통계는 이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피고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형사사건에서 담당 판사가 기록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다 보니 상당한 부작용도 파생된다. 즉 중요한 주장에 대한 판단유탈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형사법 기본 원칙에 대한 피고인의 주장이 왜곡될 수 있다. 즉 이러한 주장에 대한 법원의 편견 가능성이다. 즉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 않다고 왜곡되게 반응할 수 있다.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헌법 상 보장된 기본권 사항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술거부권 등이 인정되는 것이다. 대법원 판사의 1인당 사건 수 자체만으로 이는 헌법 상 재판청구권의 침해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그냥 그대로 방치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판사들의 자유심증주의가 잘못 적용될 개연성이 높다. 아무리 악랄한 범죄를 저질러도 자백하고 합의만 하면 용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사건의 부담에 몰린 법원으로서는 그저 사건의 부담을 줄여주는 피고인의 행위만이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범죄 행위이나 의외로 선고 형량이 가벼운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일반 상식적으로 경미한 사건의 경우가 의외로 놀라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최근의 강제 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하철이나 다중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신체의 접촉사건이 너무 지나치게 중한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분석해 보건대 이들 범죄의 경우 대다수 사건에서 부인을 하니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이런 유의 사건의 경우에 증거조차 불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사건 수에 몰리는 법원으로서는 이에 다소 왜곡된 반응을 보이고 이를 판결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물론 이해는 된다. 이와 같은 유형의 사건에서 모두 부인한다면 사건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법원의 시각에서 보면 개연성이 높은데 부인하니 짜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형사법원칙에 따라 재판 운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엄격한 증거에 의한 사실 인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심지어 사건 현장에 대한 도면이나 상황에 대하여는 아무런 고려없이 피해자 말만 의존한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 피해자의 말이 객관적인 상황과도 다름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보인다면 이는 심각하다. 여기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까지 적용되니 그 심각성은 더해진다. 제대로 된 공판상의 사실 심리가 부실해지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제 형사재판에서의 기본권 침해 등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하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형사재판 분야가 법의 사각지대화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먼저 사건 수에 밀려 제대로 된 재판청구권이 보호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형사법 원칙에 벗어난 재판 운영에 대하여는 그 과실 정도에 따라 엄중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사법기관이 국민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로서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권한의 막중함에 비례하여 그 책임도 엄격하게 지도록 제도적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형사재판 전반에 대한 재점검과 재정비가 이루어지기를 감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