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의외로 큰 나라였다. 다만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을 사랑하는 라틴계의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의학과 수학 등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루마니아는 인구 2,100만명으로 발칸 반도에서는 비교적 인구가 많다. 그리고 국토의 크기는 한국 전체 국토보다 조금 더 크다. 그리고 문맹율이 0%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루마니아 국경에 진입해도 다른 나라와는 달리 비공식적 통행료가 없는 것이 보니 사회가 좀 안정적이고 바른 모양이다.
루마니아라는 뜻이 ’로마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토지‘라고 한다. 그만큼 로마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수도는 부큐레슈티이다. 그 지명은 ’기쁨이 넘치나는 곳. 기쁨이 솟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일설에는 부투르라는 양을 사육한데서 지명이 나왔다고 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그렇지만 상당히 친절하다. 길을 물으면 직접 안내할 정도로 친절하다. 언어도 존대말이 있다. 예의를 갖추고 있다. 서방의 예의지국인 셈이다.
루마니아인들은 라틴계여서 정서적이고 자존심이 강하다. 그래서 성격상 잘못을 시인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큐레슈티의 특징적인 현상은 심한 교통체증이다. 휴가철임에도 교통체증이 여전히 심해 보였다. 200만 명이 살고 있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큰 도시이다.
이 도시는 초기 카롤1세 국왕시절에 개발되었다. ”리틀 파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했다. 1977년 대지진이 발생되어 건물이 무너졌다. 그리고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자신의 궁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과거의 유적지가 많이 소실되었다. 차량이 150만 대가 넘는데도 비교적 공기가 맑았다. 도심 내의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도심 내에 26만 평의 공원이 있었다. 그 안에 6홀의 골프장이 있다고 한다. 주로 외교관 등을 위한 골프장으로 조성되었다. 루마니아는 전체를 통틀어 정규홀이 2개 밖에 없다. 불가리아는 흑해 주변에 3개의 골프장이 있다.
시내 입구에 개선문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파리의 개선문보다 3미터가 높다. 마침 오늘이 37도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여름에는 습도가 없어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높이 올라갈 때는 43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키셀레프가 가장 비싼 주택가이다. 평당 4천만 원에서 5천만 원을 호가한다. 루마니아에서는 상업지구와 주택지구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자기집에서 사무실을 개설하기도 하다. 식당이 주택가 안에 있다. 시내에 있는 농민박물관은 유럽 최대의 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건축양식이 루마니아의 전통 건축양식이 특징적이다. 빅토리아 광장에는 정부청사가 있었다. 프랑스처럼 이원집정부제이다. 음악박물관도 아름답다. 1800년대 건립되었다고 한다. 건물들이 아름다워 '리틀 파리스'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가리아에서 다뉴브강을 지나서 루마니아에 오면 가장 큰 변화는 라틴 글자이다. 알파벳 글자가 눈에 띄였다.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유럽의 3대 미인국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루마니아이다. 그만큼 루마니아에는 미인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라틴족이어서 음악, 미술 등에 조예가 높았다.
혁명의 광장 주변이 중심지역이다. 1989년 12월 25일에 차우세스쿠가 처형을 당한 과정이 흥미롭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혁명의 탑이 있다.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단이 벽에 기재되어 있었다. 이곳에 정부청사가 있고 과거 궁전, 박물관, 음악당 등이 있었다. 캐롤1세가 즉위하여 루마니아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독일의 포헨졸렌가의 사람으로 추대되어 그 업적을 이루었다. 즉 1866년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가장 잘 살았던 나라이다.
지하철, 트램과 트롤레이 등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었다. 루마니아는 수학이 발전되었다. IT강국이다. 인도 다음으로 컴퓨터공학이 발달하였다. 안철수 백신도 루마니아 백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차우세스쿠 궁전은 놀라울 정도로 웅장하다. 단일 건물로는 미국의 국방부 건물 다음이라고 한다. 지금은 국회의사당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앞에는 정부청사가 들어서 있다. 안타깝게도 차우세스쿠는 공사공정이 80% 완성된 상태에서 처형당하였다.
그 앞에 크레출레스쿠 정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원래 위치에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9천만 톤이 되는 건물을 이전하였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이유는 차우세스쿠 궁전을 짓기 위하여 그 계획선 안에 있는 교회를 다 철거하려고 하자 정교회 사제들이 이를 반대하였다. 이에 그러면 그중 8개 정교회를 이전하도록 요구하여 이에 응한 것이다. 현재의 위치로 이전을 하여 지금 크레출레스쿠 정교회를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루마니아는 고대로부터 의학이 발전하였다. 김일성의 혹을 수술한 병원이 있을 정도로 높은 의술을 자랑한다. 세계 최초로 신장결석수술을 했다고 한다. 부쿠레슈트대학의 본관이 시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법대. 수학 등이 유명하다. 아세다경제대학은 경제분야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대학인 모양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가는 대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루마니아에서도 한국학이 인기라고 한다. 특히 이는 K-POP의 인기에 부응한 모양이다. 그러나 K-FOOD는 호불호가 나뉘어진다고 한다.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은 서유럽에 취업하고 있다. 특히 영국으로 진출을 선호한다. 루마니아에서는 법정 최저수입이 450 유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력부족은 서남아시아에서 인력수입에 의하여 이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루마니아는 과거 유로의 3분의 1의 밀을 생산한 국가였다.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불리워졌다.
점심은 야채스프, 돼지고기와 감자튀김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날씨가 더워서 차가운 생맥주를 주문했다. 그런 대로 맛이 괜찮았다. 모처럼 일행과 담소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어서 올드 타운에 들렀다. 이곳은 이제 젊은이의 거리 즉 대학로로 변한 곳이다. 고풍스러운 건물에 야외 카페들이 멋지게 어울렸다. 밤12시가 되면 락카페가 된다고 한다. 서유럽 등의 젊은이가 물가가 싼 이 곳에서 밤 문화를 즐기는 모양이다. 동유럽국가의 어두움과 아픔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루마니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더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