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형사 판결에 등장하는 문구가 새롭게 와닿는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 이는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이다. 공소사실의 입증 정도를 의미한다. 민사사건은 증거의 우위에 의해 결정된다. 즉 증거가 조금이라도 많으면 승소할 수 있다. 그러나 형사사건은 다르다. 국민의 변호사인 검사가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을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 인천 낙지 살인사건에서도 이 기준에 의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 최근 제주판 살인의 추억사건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있을지 모르지만 법리적으로는 바람직하다. 백명의 죄인을 놓쳐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고도의 입증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사 및 공소기관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이에 반하여 피고인의 지위는 열악하다. 방어권을 위하여 작은 정보나 자료를 입수하는 조차 너무 어렵다. 이에 따라 형사처벌을 위하여서는 고도의 입증이 필요하다. 즉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높은 입증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이런 법 원칙은 그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법관 스스로가 그리 신경을 써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판결이유에서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유죄의 판결을 하였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그리고 ‘고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최근에는 더 경악할 만한 경우도 있었다. 국민참여 재판에서 배심원전원이 무죄 평결을 한 사안에서 법관이 유죄를 선고하였기 때문이다. 배심원전원이 무죄라고 본 것 자체가 합리적 의심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법관이 유죄의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법을 떠나 상식차원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법관 권한의 적정한 통제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사실인정과 법리적용의 분리이다. 하나는 배심원이 나머지는 법관이 담당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정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법정관련 빙정거림이 있다. 법정에는 검사만 2명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법관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수는 없다. 지나친 면이 있다. 이는 법관을 폄해하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법관 역할의 정립차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따라서 그 의미를 좀더 새겨들을 필요는 있다. 즉 법관의 기본적인 역할의 문제와 직결된다. 법관은 억울한 피고인을 구제하는 것이 기본적 소임이다. 물론 법원칙하에 엄중함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다. 오히려 법관이 형사처벌을 위한 법기술자로 오인되는 면이 없지않기 때문이다. 억울한자의 구제보다 의심스러운자의 처벌에 무게중심이 더 쏠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소가 된 경우에는 법원에서 마치 유죄의 예단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다. 예단이 없다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보장에 좀 더 적극적일 것이다.
그런데 형사재판의 현실은 다르다. 피고인의 주장 내지 증거신청은 외면되기 일쑤이다. 나름의 이유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피고인의 시각에서 보자. 그 시각에서는 일반 민사사건보다도 심리가 허술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런 상황은 심각한 문제를 노정한다. 기본권 침해논란까지 제기할 정도이다. 헌법상의 방어권 등의 훼손 논란여지가 있다. 이런 문제는 사법절차의 헌법위배에 대한 구제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판결문 작성례는 이러한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형사원칙에 비추어 보자. 이에 따르면 무죄판결문은 그냥 한문장이어도 된다. 왜냐하면 피고인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죄판결문은 아주 상세해야 한다. 특히 해당 처벌형에 이르게 된 일련의 과정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이를 통하여 판단의 오류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유죄 판결문은 극단적으로 보면 거의 메모수준이다. 이에 반하여 무죄판결문은 논문을 연상케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될까? 판결문의 직접 당사자는 피고인이다. 따라서 판결문은 피고인을 중심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알기 쉽고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이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유죄판결문은 아무리 상세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죄를 인정하게 된 일련의 증거 등이 자세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나아가 유죄에 이르게 된 일련의 과정 역시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법관 스스로의 자기 검증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 완전히 반대이다. 어떻게 이를 설명할 것인가? 적어도 현행 판결문이 사법소비자친화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법원편의주의로도 보인다. 형사법원칙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따라서 현행 판결문작성 실무는 개혁되어야 한다.
법은 처벌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법관은 형벌을 내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공정한 심판자일 뿐이다. 특히 형사법 원칙은 철저히 준수되어야 한다. 예단 등에 의하여 무리하게 형벌을 가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이는 가중처벌되어야 할 범죄이다. 억울한 사람을 구제함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억울한 사람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사법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공판의 심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형사법 기본원칙에 따른 공판 중심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공판을 중심으로 치열한 법리 논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시시비비가 명몀백백히 가려져야 한다. 이에 따라 현출된 증거와 판단에 의하여 처벌되고 무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형사재판실무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는 최근 대법원의 행보에서 비롯되었다. 진보성향의 대법관이 끼친 영향이 크다. 좀더 인권의식을 가지고 전향적으로 사안을 검토하는 방향이 느껴진다. 차제에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는 형사재판절차는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판결문 작성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무죄판결은 간단해야 한다. 그러나 유죄판결의 이유는 상세하게 기술되어야 한다. 적어도 민사판결문보다는 좀더 분석이유가 필요하다. 즉 유죄 및 그 처벌형에 이르게 된 일련의 과정이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증거에 의한 사실인정 과정도 명확히 기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법관은 스스로 자기검증을 해야한다. 나아가 이는 곧 객관적 사후적 검증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판결문은 무엇보다도 피고인의 시각에서 기술되어야 한다. 즉 사법소비자 친화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공판을 중심으로 치열한 법리 논쟁을 통하여 유.무죄가 판명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관예우 등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는 불공정성의 극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좀더 형사기본원칙에 충실한 한국의 형사사법절차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