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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 절차의 키워드: 자백 그리고 합의

형사사법절차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공판중심의 치열한 법리다툼이 필요하다. 검사 역시 국민의 변호사 (People’s Attorney)일뿐이다. 형사절차에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필요하다. 피고인은 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있다는 점만 주장. 입증하면 된다. 그런데 형사절차와 민사절차를 혼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시정되어야 한다.

글 | 김승열 법률큐레이터,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2019-07-06 /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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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사절차의 키워드는 “자백”그리고 “합의”이다. 이들이 양형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 두 단어에 대한 광신적 맹신이 주객을 전도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내모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피고인 그리고 피해자 모두 금전적 보상에 의한 합의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합의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은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데이트 폭력 살해범에게 집행유예선고가 내려졌다. 유족과의 합의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재판부의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나면서 신체의 일부가 접촉을 한 사안도 실형이 내려졌다. 초범이었다. 비난 여론이 일자 보석되었고 2심에서 집행유예선고가 내려졌다. 그리고 영화 촬영 중 감독에 지시에 의한 접촉도 강제추행으로 보아 이 역시 집행유예였다

결과만 단순히 비교해 보면 이해가 어렵다.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보기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사회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재판부의 진지한 심리와 고독한 성찰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판단의 적정성을 믿고 싶다. 그렇지만 이 사안들은 한국사법현실을 재조명하게 한다.

한국형사 절차의 키워드는'자백'그리고 '합의'이다. 이들이 양형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 두 단어에 대한 광신적 맹신이 주객을 전도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내모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피고인 그리고 피해자 모두 금전적 보상에 의한 합의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합의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은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무죄가 애매한 사건이 엉뚱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괘씸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추리드라마의 단골메뉴가 있다. 형사가 범인을 잡을 때 상투적으로 하는 문장이다. 세가지 말로 요약된다. 진술거부권이 있다. 진술이 불이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란다 원칙이다. 이의 고지가 없이 얻은 진술은 증거로 사용되지 못한다. 즉 진술거부권은 권리이다

권리는 의무와 다르다. 권리의 행사로 인한 불이익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한국 형사 절차의 현실은 거의 반대이다. 수사 등 과정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불리하게 작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연하게 조사관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인하지 말고 자백하면 정상참작이 될 거라고 한다. 조사하는 사람에게도 편하니 그에 따른 이익이 있다는 뉘앙스이다.

재판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자백하면 간이 공판절차로 진행된다. 법정에 있는 모두가 편하다. 남은 문제는 단지 형량의 문제일 따름이다. 변호사의 기능이 마치 자백을 강요하는 분위기이다. 즉 재판부의 심기를 건드씸고 싶지 않는 것이다

강력하게 무죄를 다투면 이에 대한 불이익을 강조한다. 형사 처벌에 목전에 둔 사람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과거에 공무원의 경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서는 벌금을 받아야 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무죄주장은 금기시되었다. 무죄를 주장하게 되면 그 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위자백이라도 강요되는 분위기다. 어차피 인생자체가 확률게임이다. 변호사는 재판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우선의 목표이다. 즉 가급적 피고인의 자백을 유도한다. 그리고 피해자와의 합의에 집중한다. 자백하고 합의되면 모든 것은 끝난 셈이다. 이제는 재판부의 관용만이 남는다. 이때 변호사들과 재판부와의 친소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 비공식적 변론의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형사절차는 공판 중심의 절차가 아니다. 자백과 합의만이 절대적 전제조건으로 보인다. 무죄를 다투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 재판부는 개전의 정이 없다고 본다. 검사는 죄질이 나쁘다고 본다. 변호인은 괘씸죄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피고인이 그냥 내팽겨쳐 지는 것이다. 형사원칙은 낡은 교과서에만 있을 뿐이다. 형사소송법 기본도 무시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많은 사건 때문에 주장 자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인다.

형사절차에서 변호사의 비용은 몇 백만 원에서 몇 백억 원대에 이른다. 엄청난 비즈니스다. 그러나 그 금액이 과연 적정한 대가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든다. 대다수 형사사건은 결과가 중요하다. 과정은 그냥 쇼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이런 견해가 오히려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속 또는 불구속 아니면 보석이 중요하다. 그리고 선고 형량만이 있을 뿐이다.

일부 대형로펌은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여 형사사건에 집중하였다. 주로 부장판사급 이상의 전관변호사의 영입이다. 지금 같이 어려운 시기에 형사사건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가장 가성비가 좋은 변호사 활동 영역이다

구속과 불구속의 갈림길은 당사자에게는 거의 천당과 지옥이다. 이를 결정하는 사람은 재판부다. 재판부와 의사소통 여부가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공판에서 법리주장은 그리 관심대상이 아니다. 이는 피고인 스스로가 더 잘 안다. 무리하게라도 어떤 결과를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 비용에 대하여는 전혀 아깝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선고형량이다 상당수의 사건에서 이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빵 하나를 훔쳐도 구속이 된다. 그러나 일부는 몆 백억 아니 그 이상을 사실상 자기 주머니에 넣어도 감옥소에서 풀려난다. 아무리 보아도 기준이 너무 명확치 않다

절차과정에서 형사법의 기본 원칙은 무시되는 느낌이다. 나아가 법관의 자유 심증주의는 거의 제한이 없어 보인다. 경험칙이나 일반 상식을 벗어나 무한히 확대되는 느낌이다. 비상식적인 판결에도 그 어느 누구하나 제대로 된 발언이 없다.

심지어 강간을 범하여도 합의만 되면 사실상 거의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지어 기소조차 되지 아니한다. 이에 반하여 경미한 사안도 피해자와 상호 대립되면 그 결과가 거의 같게 된다.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대가는 엄청 크다. 무조건 피해자의 합의만이 강요된다. 행위당시의 비난 가능성보다는 사후의 태도 등이 양형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개전의 정이 양형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곧 재범의 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개전의 정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자백과 합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양형은 거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일견 보기에 경미한 사안도 징역형이 선고된다. 듣기만 해도 끔찍한 범죄도 자백하고 합의하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분위기이다. 변호사에게는 엄청난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자백, 합의 그리고 적정한 관용의 요청 등등 이것이 한국의 형사재판의 현실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공판중심의 재판이 되지 못한다. 공판절차에서 굳이 심각하게 다툴 필요가 없다. 무죄주장을 하면서 공격적이면 모두의 반감을 사게 된다. 법리에 따라 원칙적으로 다투는 것 자체로서 위험성이 있다.

그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피해자의 합의만 구하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만 하면 실형이 내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백하고 합의한 사건의 경우 재판부역시 아무런 부담이 없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합의에 노력한 행위가 높이 평가된다. 이는 다른 사건에서 해당 변호사에 대한 평판과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이런 점에서는 부자인 피고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합의가 곧 개전의 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문자 그대로 피해복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형사재판의 의의를 찾을 것이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잘못을 뉘우치고 나아가 피해회복을 다하였는데 그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 때는 오로지 관용만이 답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장점 못지 않게 위험성이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행위태양의 위험성이다. 이에 대하여 정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후의 정상참작이 필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공판중심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형사재판의 본질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간단한 간이 공판으로의 유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진술거부권이 권리인 것처럼 자백도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백을 일종의 개전의 정으로 보는 시각 역시 위험하다. 그런 평가는 억울한 사건을 끝없이 양산하게 된다. 그리고 형사재판 절차에서의 정의의 구현을 방해한다. 자백을 직. 간접적으로 유인하여서도 안 된다. 진술거부권이 권리인 것과 같다. 자신의 결백을 위하여 적극 주장하는 것 역시 인간 본연의 권리이다.

형사절차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법원편의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실체가 규명되어야 한다. 귀찮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자신의 권리의 행사가 폄훼되어서는 아니 된다. 무죄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합의가 가장 좋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적정한 피해구제를 위한 노력 역시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공탁제도이다. 그런데 공탁제도가 오히려 막혀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이다. 그 와중에 피해자는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된다. 이는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공탁제도 역시 이제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를 위한 제도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과도하게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시도 역시 적정하게 통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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