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재판 성격이 짙은 사건이 화두이다. 혼자 사는 여성 집에 들어가려는 범죄가 발생하였다. 이에 관한 동영상이 온라인으로 퍼졌다. 그러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강력처벌을 주장하는 여론이었다. 형법상 이와 같은 행위는 어느 범죄일까? 당장 떠오르는 죄명은 주거침입죄이다. 그런데 이 역시 기수(旣遂)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주거에 들어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거침입 미수로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다소 놀라운 상황이 발생했다.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신청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의아한 점은 바로 그 죄명이다. 그 죄명이 다름 아닌 주거침입 강간미수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 단계에서도 별다른 이의 없이 그대로 영장을 청구했다. 놀랍게도 법원 역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놀랍다. 먼저 강간 고의가 있는 것일까? 강간의 고의가 소명된 것일까? 수사기관에서는 여자 혼자 사는 집, 과거 동일한 행동으로 강제추행을 한 전과 등에 의하여 고의가 있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으로서는 당연히 그와 같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법원이다. 구속영장 자체가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사방법에서 신병을 확보할 필요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즉 강제수사를 허용할 것인지만을 결정하는 절차이다.
구속영장의 발부요건은 죄의 중요성,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이다. 동영상도 있어 증거인멸 등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도주 우려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에 대하여 달리 자세한 심리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행위의 위험성 내지 범죄의 심각성이다. 법원에서는 이 건의 경우 행위의 위험성이 크다고 보았다.
순간 혼란스럽다. 물론 피해자 시각에서 보면 그 위험성은 높다. 그렇지만 형사절차에서는 피해자도 중요하지만 피의자의 인권 등도 중요하다. 적정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 시각에서 살펴보자. 일단 피해자의 문을 강제로 열려고 시도한 행위를 어떻게 법적으로 평가할 것인가?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를 주거침입 강간의 실행착수로 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강간의 의사가 있었다면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는 행위는 실행행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강간의 고의 여부이다. 강간의 고의가 소명되지 않으면 주거침입 강간죄 자체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물론 일반인이 이런 상황에서 ‘강간의 고의’를 추측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추측이 형사 절차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당시 발언이나 행위 자체에서 강간의 고의를 추론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막연한 추측에 의한 ‘강간의 고의’를 추론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추론이 합리적으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재판에서 그 고의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니 적어도 다툼의 여지는 있다. 그럼에도 구속이 집행될 수 있을까?
신문 지상을 장식한 수많은 피의자들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충격적이다. 수많은 사건에서 그 죄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에도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경우 영장이 기각되었다. 이를 보면서 사법 정의에 대한 우려를 느끼기도 하였다. 어떤 사안은 증거인멸을 실제로 한 경우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이 과연 구속영장이 발부될 정도로 ‘강간의 고의’가 소명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시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실제 구체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미수사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간의 고의’ 여부는 분명 다툼의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구속이 과연 형사법 원칙에 비추어 합당할 것인가? 만일 이와 같은 범죄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발생된 경우에도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을까? 피의자 인권 등을 중요시 하는 국가에서의 시각이 궁금하다. 그 나라에서는 인신 구속에 대하여 전반적인 거부 반응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거의 의미가 없어 보이기는 하다. 또한 궁금한 점을 들자면 이와 같은 영장 발부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여론이 없었을까? 법률직에 종사하는 필자로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강간의 고의 여부는 내심의 문제여서 달리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객관적인 증거 등에서 ‘강간의 고의’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추론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피해자 시각이 중요하지만 피의자 시각도 존중되어야 한다. 형사법에서 피의자 등의 인권 자체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만일 피의자나 피의자의 가족 입장에서 느끼는 반응은 어떠할까?
법률직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무엇인가 잘못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위험한 사회를 보는 듯하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까지 연상될 정도이다. 그 정도로 위험성이 느껴진다. 당시는 증거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럴 것 같다는 추측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사법 집행이 바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법집행은 그러한 추측을 실험하는 절차였다. 무엇보다 집단여론이 지배한다. 소수나 약자의 인권은 무시될 뿐이다.
필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역시 문제이다. 그럼에도 그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자가 없다면 이 역시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법률지식이 얕은 필자가 먼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제기한 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더 공포스럽다.
마치 사법 분야에서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하는 느낌이다. 형사법의 기본 원칙을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이 여론에 휘둘려서 그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정치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보이기도 하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법은 단지 처벌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이다.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반면에 피의자의 인권은 관심권에서 벗어나 보인다. 길게 보면 피해자 역시 피의자 신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따라서 피해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는 법원이다. ‘강간의 고의’ 부분은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신구속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도로 집행되어야 한다. 법의 집행에서 이와 같은 형사법의 기본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인권 운운하는 수많은 지식인 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필자만의 지나친 과민반응일까?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형사법의 기본원칙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소명감은 든다. 공감 여부를 떠나 다수와 다른 시각과 의견 역시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필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