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과정, 외국 학위 과정, 박사 과정, 사이버 대학, 유튜브 강좌 그리고 백화점 문화 강좌......
최근 10년간 필자의 배움의 이력이다. 지금 생각하니 백화점 문화강좌는 한마디로 필자에겐 숨겨진 미지의 세계다. 그간 일종의 금남의 영역이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도 여성이 절대적으로 다수이다. 그러고 보니 역시 여성분들이 좀 더 감각적이다.
삶을 감각적으로 살면 아름답다.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덧없을 뿐이다.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찾아 나선 지루한 여정에서 기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였다. 이제 문화강좌가 필자의 시험대에 올랐다. 그런데 의외로 부담없는 안식을 제공해준다. 반갑다. 그러다 보니 과욕하게 되었다. 요리강좌, 미술강좌 등등 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저 욕심만이 앞섰다. 다시 20대의 열정이 문제였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너무 욕심을 내다 보니 벅차다.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없었다. 그리 바쁘지는 않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강좌를 과감하게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그저 아쉽고 후회스러울 뿐이다.
그간 배움의 길에서 일상적인 반복이다. 쳇바뀌를 돌 뿐이다. 이제 다시 그 무엇을 찾아 나서야 하나? 그 와중에 유일하게 중단하지 않은 강좌가 있었다. 커피 바리스타 과정이다. 이는 왠지 부담이 없어 보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해지를 못하였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일까? 그리고 보니 사모펀드도 커피 시장에 뛰어든다는 기사도 보인다. 사실 포도주 시장이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벅차다. 반면 왠지 커피 시장은 그리 버거워 보이지 않아서 일까? 어쨌든 고마울 따름이다. 문화강좌와 완전히 모든 인연을 끊는 최악의 상황만은 일단 피한 셈이다.
아주 젊고 호남형의 강사가 싱그럽다. 왠지 긍정과 여유가 느껴진다. 첫날은 간단한 이론과 실습이다. 먼저 커피의 역사를 설명한다. 왠지 흥미롭다. 너무 익숙하고 반복된 일상 영역에서 다소 벗어나게 해주었다. 사실 내용은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커피에 문외한인 필자에게는 모두 솔깃한 정보이다.
먼저 커피를 최초로 발견한 곳에 놀랐다. 이디오피아였다. 그것도 염소를 치는 목동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재미있다. 커피가 중세에 종교적인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수도승이 기도 중에 잠이 들지 않기 위하여 이를 마셨다고 한다. 커피와 흑인 그리고 수도승... 그간의 커피의 이미지와는 다소 괴리가 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도 수도승께서 종교 목적으로 마실까? 수도승이 종교 목적으로 좋아하는 커피? 일반적인 커피 광고나 카피에서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에서는 고종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아관파천 당시 프랑스계 독일인인 손 탁 여사가 커피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커피의 쓴 맛을 즐긴 모양이다. 황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가는 신세였으니.... 커피의 쓴 맛이 쓰린 마음을 달래준 모양이다.
커피는 커피나무의 씨앗을 가공한 것이다. 커피나무의 열매인 커피체리를 수확하여 씨앗을 가공한다. 가공한다는 의미는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씨앗을 볶고(Roasting), 가루로 만들고 이를 다시 블루밍(Brewing)하는 과정이다. 먼저 각각의 씨앗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
한국은 왜 유명한 커피씨앗이 없을까? 기후와 토양의 문제라고 한다. 씨앗은 크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로 나누어진다. 아라비카는 고지대에서 자라고 향이 좋고 기분 좋은 신맛이 난다. 로부스타는 평지나 고지대에서 자라고 향이 약하고 쓴맛이 많이 난다. 여기에서 카페인만을 제거한 것이 디카페인 커피이다. 그리고 로스팅(Roasting) 즉 볶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많이 로스팅할수록 색깔이 진하다. 물론 그럴수록 그 향도 진해진다. 그리고 이를 분쇄하여 가루로 만든다. 그리고 추출한다. 추출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9기압 아니면 중력? 이에 따라 에스프레소와 핸드 드립으로 나뉜다. 추출 방식에 따라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가 나오는 것이다.
실습은 칼리타 드립 세트로 블로밍하는 것이었다. 위가 원형이고 내려가면 그 바닥에 3개의 구멍이 있는 드리퍼가 색다르다. 이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놓는다. 여기에 커피 가루를 한 스푼 반 정도를 붓는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적신다. 커피 양의 대략 15배 정도 분량의 커피를 만들면 된다. 가급적 여과지의 가장자리에 물이 닿지 않게 해야 한다. 한 방향으로 물을 적시면 된다. 커피 가루에 물이 닿으면 커피 가루 가운데가 먼저 부플어 오른다. 가운데가 커피가 가장 많다. 따라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다. 즉 이는 안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과정이다. 그리고는 물이 내려가면서 가운데가 꺼진다. 그러면 다시 물을 적시듯 부으면 된다. 조그마한 창조의 시간이다.
조그마한 종이 잔에 커피를 담아 마셔본다. 내가 만든 커피라서 그런지 맛이 남다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필자에게는 비싼 아라비카 보다는 로부스타가 더 커피 같다. 역시 싼 맛이 필자에 더 맞는 모양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맛을 못 봐서이다. 이디오피아 산 아라비카는 처음 느끼는 맛이다. 그 맛이 좀 독특했다.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표현 여부를 떠나 필자에게 그 맛이 먼저 낯설다. 염치불구하고 무슨 맛이냐고 물어보니 무어라고 설명하는 데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엉뚱한 좌절의 순간이다. 한편으로는 색다른 도전의 여정을 예감케 했다. 어쨌든 그간 경험하지 못한 맛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 온 느낌이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창조(?)의 즐거움이랄까? 왠지 뿌듯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고개를 든다.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은 자극이다. 필자가 그간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그저 반갑다. 고맙게 느껴진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배움은 즐겁다. 그런데 그간 배움이 왜 그렇게 힘들게 느껴졌을까? 너무 복잡하지 않아서일까? 적당한 강도의 배움이어서 인가? 시험성적테스트가 달리 없어서 인가? 아니면 너무 색다른 배움의 길이어서 일까? 조금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지금 느낌은 마냥 좋다. 그저 설레이고 상큼하다. 왠지 세상이 조용하면서도 더한 층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좀 더 멋지게 살고 싶게 만든다. 차제에 새로운 별천지로 한번 항해를 떠나보고 싶다. 알고 나면 그리 색다르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궁금하다. 그리고 도전해 보고 싶다. 오늘도 이 세상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