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子: “자”)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 장소는 다름 아닌 대법원의 공개 법정이었다. 즉 공개 변론이 열린 것이다. 주된 쟁점은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에 대한 법적 해석문제였다. 즉 누가 법적인 부(父: “부”)인가하는 문제이다. 생리학적인 부와 부의 의사를 가진 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도로 출생하였으나 착오로 이에 대하여 친자로 신고한 경우의 법률관계도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된 사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남편이 불임이어서 남편의 동의 하에 인공수정을 하기로 하였다. 즉 정자를 제3자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인공수정으로 자를 출산하였다. 그리고 태어난 자식을 자로 신고하였다. 이 경우 누가 부가 될 것인가? 혈연관계로 보면 정자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부가 되고자 하는 의사는 전혀 없었다. 단지 자신의 정자를 제공하였을 뿐이다. 반면에 당시 남편은 생리학적인 부는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부가 되고자 하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의사 하에 인공수정에 동의한 것이다.
이 경우에 법적으로 누가 부가 될 것인가? 이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아니하다. 혈연상의 부가 아니라 인공수정에 동의하고 부가 되고자 한 남편이 법적인 부가 될 것이다. 이런 해석은 당사자들의 의사에 합치된다. 물론 혈연성을 강조하면 그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부가 되고자 한 남편을 부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국의 법리해석 역시 이와 같다.
문제는 인공수정에 동의한 남편이 부가되는 법적 논거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 민법 제844조는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한다. 이 규정을 그대로 활용하면 비교적 문제가 간명해진다. 그런데 해당 추정규정의 적용과 관련하여 견해가 갈린다. 혈연설은 추정을 부정한다. 반면에 외관설은 추정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판례는 외관설이다. 판례는 이와 같은 추정을 깨뜨리는 사유를 극히 제한하고 있다. 즉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같은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유에만 그 추정을 배제한다. 따라서 현행 판례에 의하면 문제가 된 이 사안의 경우도 외관설에 따라 결론이 명확하다. 즉 당연히 추정규정이 적용된다. 따라서 이에 따라 남편이 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법원의 판단은 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추정은 두 가지 방법에서 깨뜨려질 수 있다. 즉 그 중 하나는 추정을 일으키는 기초사실을 깨뜨리는 경우이다. 즉 동거하지 않는다는 등의 사정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추정이 되더라도 추정된 결과가 객관적 사실과 부합되지 아니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추정이 더 이상 법적 의미가 없어진다. 추정된 결과가 깨뜨려 진다. 즉 DNA검사를 통하여 자와 부사이의 혈연관계가 부정되면 자의 추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된 사안에서는 DNA검사 결과에 의하여 이런 추정된 결과가 유지될 수 없다. 즉 혈연이 아님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경과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단 민법 규정에 의하여 일단 자의 추정이 된다. 그렇지만 그 추정 결과는 이와 배치되는 새로운 입증에 의하여 무너진다. 즉 추정에 따른 결과는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민법상 자의 추정규정이 적용되고 안되고는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제3자의 정자에 의한 인공수정이라는 사실만 밝혀진다면 자의 추정은 법적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법리 해석상 누가 부가 될 것인가? 또한 부가되는 그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 이 부분은 결코 쉽지 않다. 가능하면 새로이 법을 제정하여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에 대한 근거법이 없는 사정 하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불문법 국가에서는 법적 근원이 판례법이므로 법원에서 판단하면 된다. 그것이 곧 바로 법 즉 판례법이기 떄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불문법 체계의 장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성문법 국가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법의 부재를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재판을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즉 판례에 의하여 인공수정을 통하여 ‘부‘가되고자 하는 남편의 의사에 그 법률적 효력을 부여하면 된다. 즉 혼인이라는 제도 안에 있는 배우자 사이에 자치적 성격의 의사에 그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임 등의 특별한 사정의 경우 인공수정을 통하여 자를 출산하고자 하는 당사자 사이의 자치 의사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사는 자의 법적 지위에도 큰 영향을 미치므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여야 한다. 즉 이는 입양과 사전 인지 등을 합친 좀더 융합적이고 포괄적이며 나아가 취소할 수 없는 법적 의사표사이다. 이의 취소가 그 행위의 성질상 제한되는 확정적 창설적 신분행위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스위스의 입법례에서는 명시적으로 이 경우 부는 달리 친생부인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미국의 판례법 역시 부가 일단 비배우자 인공수정에 동의한 경우에는 그 이후에 친생부인을 할 수 없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
나머지 사안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즉 외도에 의한 자의 경우에는 남편의 부에 대한 의사가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그 효력은 유동적이다. 즉 부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안 이후에 승인권과 취소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제3자의 지위가 다소 염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생리학적인 부가 별도로 있다. 또한 그 부는 스스로가 부가 될 개연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는 친부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접하면서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성문법 국가에서 관련 법령이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즉 이를 위하여서는 국회의 본연의 기능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저 정쟁이나 일삼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마져 느끼게 한다. 적어도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하여는 국회 차원의 공론화를 통하여 입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대리모 문제 등도 공론화를 통하여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를 위하여 범사회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게을리하는 경우에는 국민소환 등 적극적인 채찍질도 있어야 한다. 차제에 국회의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스스로의 깊은 성찰과 자기 정체성의 재인식을 촉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