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사의 책임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문제가 된 사안은 간단하다. 회사가 특정 사업에 150억원의 기부를 하였다. 이 행위는 이사회 결의로 이루어졌다. 그 자금이 쓰이는 회사는 부채가 200%였다. 그리고 회생 가능성도 거의 없는 사정에 있었다. 이런 사정 하에서 이루어진 이사회 결의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의 결의에 찬성한 이사는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반면 당시 이사회에서 기권한 이사들은 어떠할까? 기권한 이사들을 상대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 논거는 상법에 근거하였다. 즉 기권한 이사는 '이의를 한 기재가 없는 자'라고 본 것이다. 상법규정에 의하여 이들 역시 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하여 보호받는다. 이 건의 경우는 이 원칙에 의한 보호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선관의무 위반이 어느 정도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권한 이사 역시 책임을 져야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상법의 규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행 상법에서는 “결의에 참가한 이사로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는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권한 자를 '이의를 한 기재가 없는 자'로 볼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즉 찬성도 반대도 아닌 기권행위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를 “이의를 한 기재가 없는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리 본다면 이에 따라 찬성한 것으로 볼 것인가?
1심과 2심은 기권행위는 ‘이의를 한 기재가 없는 행위’로 보았다. 이에 따라 찬성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하였다.
흥미롭게도 대법원은 달리 보았다. 기권은 ‘이의를 한 기재가 없는 경우’와는 다르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찬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 신문 보도상의 내용만으로는 대법원의 판결의 논리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좀더 사실관계의 파악이 필요한 사안이다. 기권 행위와 이의를 한 기재가 없는 경우와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견 보기에 기권행위는 '이사록에 명시적인 이의에 대한 기재가 없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같다면 찬성으로 추정된다.
찬성으로 추정된 이후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추정되니 바로 그 책임이 인정되는 것일까? 아니다. 해당 이사는 다른 증거로 반박할 수 있다. 즉 자신이 반대나 이의를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된다. 당시 증인 등으로 이점을 입증하면 추정이 꺠뜨려진다. 즉 찬성으로 추정되었지만 반증으로 그 추정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 경우 해당 이사는 회사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된다.
이사는 회사의 대리인이다. 따라서 회사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민. 형사상의 책임을 진다. 다만 사후적으로 사법심사에 의한 책임추궁은 이사의 적극적 행위를 위축할 수 있다.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법리가 경영판단의 원칙이다. 이사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하여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즉 행위시점에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면 사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 이의 보장은 이사로 하여금 적극적 경영활동을 도모하게 한다. 이는 회사와 주주 등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요소이다.
세계 각국은 모두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한다. 다만 그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의 경우는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아니하는 한 경영판단을 존중한다. 경영 판단에서 그 내용상의 당부에 대한 판단을 가급적 자제한다. 이사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면 널리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그 절차의 적정성은 중요하다. 나아가 사기나 범법행위가 아니면 달리 문제가 없다.
이에 반하여 한국은 그 인정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 이는 법원의 사후적 개입여지가 많다는 의미이다. 합리적인 정보, 적법한 절차,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는지 등 전반을 사법 심사하는 것이다. 다만 정관의 규정에 의하여 이를 면책내지 감경하도록 그 출구를 마련해 두기는 하였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대출을 실행하여 결과적으로 부실화 된 경우에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사후 결과적 책임이 강요되지는 않는다. 대출 당시에 대출조건, 규모, 담보, 채무자의 재산 및 경제사정, 회사의 성장가능성 등등 제반 사정을 고려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합리적으로 내려진 경우에는 달리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경우에 단지 상법 조문 해석에 그친 면이 있어 아쉽다. 좀더 근원적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에서 이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추정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즉 이사회 회의 논의과정과 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 분석하여 이사의 그 책임여부를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건의 경우 아무런 담보책도 없이 150억 원을 기부하는 행위였다. 달리 특단의 사정이 없다면 이는 회사에 대한 배임이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이의를 유보하지 않고 기권한 이사는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로 일견 보인다. 따라서 달리 해당 이사의 추정을 꺠뜨리는 주장입증이 없으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다소 머리를 까우뚱하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다. 파기 이후의 후속적인 심리에서 이 부분이 좀더 명확해 질 것이다.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은 중과실이 아니라 단순 과실이어도 그 책임을 진다. 그리고 그 의무 위반은 단순한 소극적 의무 위반인 경우에도 해당된다. 쉽게 말하면 위법행위를 그냥 방치한 경우에도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사회 결의 과정에서 찬성하는 이사들의 행위는 위법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대표이사 등은 이와 같은 위법한 행위를 감시하고 나아가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기권만 하고 달리 이러한 위법행위를 그냥 방치하였다면 이는 문제다. 적어도 소극적 의무 위반행위로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건은 회사에 대한 손해가 명백한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대표이사가 기권만 했다면 이는 문제다. 즉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대표이사의 추가적 행위가 필요하다. 위법행위를 설득하거나 이에 반대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러한 해석이 일반적인 법리해석이다. 그리고 이는 일반 사회통념이나 상식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에서 대법원의 결론은 다소 의아한 면이 있다. 적어도 기권한 이사들이 나름대로 반대 내지 설득을 한 자료가 있었어야 한다. 이런 증빙이 있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만 논리적으로 좀 의아하다. 다음과 정리될 수는 있을 것이다. 즉 기권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의의 기재가 없는 행위'이다. 따라서 상법규정에 따라 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기권한 이사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하서는 추가적 행위가 필요하다. 즉 기부사안에 대하여 반대하고 나름 설득하는 등의 행위를 말한다. 그 입증을 하면 기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이사는 나름 선관자의 주의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경우 상법상 추정에도 불구하고 기권이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판결이유라면 좀더 명쾌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후속 심리를 통하여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이 곧 풀리기를 기대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그리 간단한 개념은 아니다. 차제에 그 적용 기준 등이 좀 더 명확해져야 한다. 이를 통하여 이사들도 자신의 면책기준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남용한 경우에는 당연히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안의 경우에 찬성한 이사들이 사외이사라고 한다. 집행부를 견제할 사외이사가 오히려 스스로의 일탈을 부여주는 사례로서 왠지 씁쓰레 하다. 다만 이번 사안을 통하여 사외이사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는 있다. 이는 향후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사외이사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함을 실제 보여준 사례이다. 의미있는 판례로 자림매김할 것이다. 반면 성실한 경영판단은 최대한 이를 보호하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법리가 좀더 다각도로 명쾌하게 재정비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