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추행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할 필요성은 있으나 이를 형사 사건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원칙 등과의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형법상 강제 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을 제압할 정도로 강한 의미가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의 신체 접촉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이 현행 법원의 태도이다.
기본적으로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 접촉이 있으면 일단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가능성은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신체적인 접촉이면 법상 강제추행죄나 폭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중 ‘추행의 고의’의 유무에 따라 강제추행죄가 되거나 단순 폭행죄가 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추행의 고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가 실무상 중요하다. 현재 법원은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도입해 가해자의 실질적인 의사여부에 그리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신체 접촉 시에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를 느낀다면 그 자체로서 가해자의 ‘추행의 고의’를 추론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여성 의원이 “손대면 성희롱이에요”라고 이야기하며 길을 막아서자 남성 의원이 그 여성 의원의 볼을 감싸는 상황이 발생했다. 해당 여성 의원은 성추행을 주장하면서 강제추행으로 정식 고소했다. 반면 상대 의원은 오히려 사실상 감금 등을 주장하면서 “전형적인 자해공갈”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에 여성단체는 하나의 해프닝을 성추행 프레임으로 만들고 성폭력을 정쟁의 도구를 삼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이 사안이 실제로 형사법정으로 가게 될 경우 현행법원의 판결례에 따라 성추행이 인정되는지 여부와 선고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건의 경우 여성 의원의 의사에 반한 신체접촉이 있었기 때문에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인다. 물론 접촉의 원인, 이유, 경위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검토해 판단해야 한다.
현재 법원의 성추행사건 접근은 좀 독특하다. 오로지 피해자의 의사에만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 개념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느낌이다. 물론 실제 사건화되면 ‘추행의 고의’ 여부에 관해 쌍방 주장이 대립해 분명 다툼이 발생할 것이다.
이번 사안과 같은 경우 가해자(?) 측에서는 성적인 추행의 의사가 있다는 주장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에 대한 피해자(?) 측의 반론은 전형적인 주장이 예상된다.
객관적으로 일반적인 강제추행이 발생하기는 어려운 사정이지만 여성 의원이 “손대면 성희롱이다”라고 이야기 한 상태에서 접촉한 것이니 추행의 의사가 추론된다. 법원은 강제추행죄로 유죄의 선고를 해야 한다. 또한 접촉부위가 얼굴 부분이어서 옷 등을 통해 신체 접촉이 간접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여성 의원으로서는 맨살이 접촉되었기 때문에 성적인 수치감과 혐오를 더욱 더 강하게 느꼈다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로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만에 하나 이 사건이 형사법정에 가면 과연 어떤 판결이 내려질 것인가? 현행 법원의 태도로 보면 강제추행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 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원은 ‘추행 의사’에 대해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해 추론했다. ‘성인지 감수성’에 의해 여성 의원이 느낀 감정에 따라 ‘추행의 고의’를 추론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선고될 형은 어떨까? 법원의 양형기준에 의하면 초범이고 그 정도가 중하지 않더라도 집행유예 내지 극단적인 경우 실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곰탕집 성추행’사건에서 1심은 1초 접촉한 초범을 법정구속해 6개월의 실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경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여성 의원이 속하는 정당에서 성추행을 주장하자 여성단체에서는 ‘미투’ 운동의 취지를 몰각 내지 폄훼하는 것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국회에서의 성추행 의혹사건이 실제 법원에 가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여성 의원이 강력하게 성적 수치심을 입었다고 주장할 경우 현행 법원은 실제 성추행죄로 실형이나 집행유예 같은 징역형으로 처벌할 개연성이 높다.
최근 성추행 관련 판결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당혹스러울 정도다. 가히 충격적인 면마저 있다. 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일반 법상식과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신체 접촉가능 시간은 1.3초에 불과했다. 주위 목격자 중에서는 접촉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사람도 있었고 나아가 영상분석 전문가도 1.3초 이내에 성추행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감정증언을 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무고를 할 동기가 없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피고인의 진술이 번복되어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아닌 검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는 전문가의 증언이나 주변의 증인 등이 있었다면 이런 증거는 충분하게 감안돼야 한다.
유죄 판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합리적으로 배척할 정도의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뒤로부터의 접촉이었다면 피해자가 직접 목격한 사실이 아니고 단순한 ‘느낌’에 불과하다. 실제 지하철이나 극장 등 다수가 이동하는 중에 우발적인 접촉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 입장에서 이를 고의적인 성추행으로 착각 내지 오인한 사건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목격한 사실’이 아닌 피해자의 단순한 ‘느낌’은 극히 주관적이고 당시 사정과 기분에 따라 편견 내지 편차가 크다. 피해자의 ‘느낌’은 착각 내지 오인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와 같은 피해자의 느낌에 따른 진술은 신빙성 측면에서 떨어질 수 있다. 피해자의 ‘느낌’에 의존한 진술은 증거가치 측면에서 좀 더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느낌’에만 의존한 유죄판결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이는 피고인의 헌법상의 방어권 보장과 피해자의 인권 측면에서 상호 충돌하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승인된 형사법 원칙에 반할 수 있다. 물론 재판부에서 나름 증거를 충분하게 심사숙고해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지만 언론에 보도된 판결이유에서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삼는 대목은 가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검사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필요하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비추어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전체적인 판결이유의 흐름이 마치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유죄의 인정 증거판단에 있어서는 피고인의 주장보다 공소사실이 과연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있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불확실하거나 애매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원칙에 비추어 문제가 없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성인지 감수성’이 민사사건 아닌 형사재판에서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피고인의 헌법상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형사법의 기본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특히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과 ‘불확실한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 대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연방 대법원 판사인 데이비드 사우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배심원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라는 형사원칙에 충실해 평결을 내리는 모습에서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이는 대법원 판사로서의 업무수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많은 형사사건을 다루는 법관의 경우 태무심할 수 있는 형사법 대원칙에 대해 법률문외한인 배심원이 초심을 잃지 않고 이들 원칙에 충실하려는 모습에서 배심원 제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배심원 제도는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초심을 잃지 않고 원칙에 충실한 배심원들의 태도를 거울삼아 법관 역시 초심을 잃지 말라는 취지의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고인의 헌법상 인권이 달린 형사사건에서 형사법 원칙에 충실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세밀한 심리와 판결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런데 현행 형사사법절차 특히 성추행 사건에서 이들 원칙이 간과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해외 출장 중에 영미법계의 사무변호사(Solicitor)와 담화를 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겸연쩍었던 적이 있다. 식사 중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화제가 됐다. 1심 실형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 변호사가 깜짝 놀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침 그 사무 변호사가 한국 일정이 있었는데 이를 듣고 겁이 나서 취소를 심각하게 고려해야겠다는 식으로 넋두리까지 했다. 필자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다 같이 웃으면서 지나친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당시 씁쓸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어쩌면 일종의 ‘위험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마저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