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국공증인협회 초청으로 시안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가 느꼈던 점은 중국이 공증제도에 범국가적 관심이 상당하다는 사실이었다. 국가신뢰성 제고 측면에서 공증제도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놀라웠다.
때마침 한 세미나에서 만난 중국 공증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10년 이상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최근 공증인이 되었는데 수입은 다소 적지만 시간에 쫒기지 않아서 공증인 생활에 나름 만족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공증제도는 어떨까.
중국과 달리 폐쇄적인 왕조국가인 북한은 관련 공증제도가 미흡할 것임은 자명하다. 다만 향후 남북경협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의 공증제도를 알아두면 유용할 것이다.
필자는 여러 곳을 수소문해 북한 공증 관련법 자료를 구했다. 다소 미흡하지만 이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공증 실무 등에 대한 자료는 구할 수 없었음을 밝혀둔다.
폐쇄적인 미지의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이뤄지는 사적 거래 분야는 제한적이고 생소한 분야이다. 그러므로 이 분야 제도의 정착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여기에 북한 공증법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외국 기업이나 국가와 교류할 때 관련 법 제도의 명확성과 그 신뢰성 제고가 당면한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에 국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준(準)공공기관 성격의 국가 공증기관을 통한 명확성 내지 신뢰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의도가 북한 공증법에 반영되어 있었다.
북한의 공증법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으로 채택되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정령'으로 수정 보충된 법이다. 헌법, 법령, 결정, 정령 등의 북한 법체계에서 법령은 최고 국가기관인 최고인민회의가 제정한 것으로 한국에선 거의 법률에 상응한다.
먼저 북한 공증법은 그 목적을 “법률적 의의를 가지는 사실과 문서를 정확히 확인하여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의 민사상 권리와 이익(리익)을 보호하고 민사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공증은 국가 공증기관에서 하는데 관련 업무를 보는 사무실은 도 소재지에 두고 필요에 따라 시, 군소재지에도 둘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해외 거주자의 공증은 해당 국가의 인민공화국 영사(령사) 대표기관이 담당한다. 즉 해외 주재 영사관에서 이를 담당한다는 뜻이다.
공증 사업에 대한 지도 감독은 누가 할까. 한국과 달리 북한 최고재판소의 담당업무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원이 아닌 법무부의 지도 감독하에 있는 것과 대비된다.
공증법상 인증대상은 가족 친척관계, 자격, 사망자, 재산소유권, 상속, 계약, 상표, 증거 보전, 재산의 공탁 등을 비롯하여 법률적 의의를 가지는 사실과 문서이다.
국가 공증기관은 또한 외국 투자기업의 재산과 법인의 등록 기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제도의 특이점이 있다. 북한내 외국 투자기업의 실체나 기업현황을 알려면 국가 공증기관을 통해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향후 남북경협시 북한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으로선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국가 공증기관은 별도의 공탁 기관이고 또한 증거 보존기관으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한다. 다만 관련한 세부 절차 규정이 없어 정확한 이해는 어렵지만 우리의 경우 법원이 담당하는 공탁업무까지 관할하니 국가 공증기관의 중요성이 새삼 크게 와닿는다.
따라서 북한 공증기관의 역할이 상당히 광범위하고 재판소의 역할까지 일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공증 관련 비용 역시 국가 수수료 규정에 따라 책정되어 있다.
공증업무의 처리기간은 공증 신청서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 안에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점 역시 특이하다. 달리 보면 해당 공증업무가 상당히 중요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공증제도에 있어 불복절차를 상세하게 규정하다. 이점 역시 눈에 띈다.
공증에 이의가 있으면 5일 안에 해당 국가 공증기관 소재지에 있는 재판소에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재판소는 10일 안으로 심의하고 판정으로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재판소의 판정에 이의가 있으면 판정서 등본을 받은 날로부터 10일 안에 상급재판소에 상소할 수 있다.
상소법원은 1개월 이내에 판정을 한다. 공증법상 명시적으로 사후 불복에 대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즉 북한은 공증업무를 재판업무에 준하여 이해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남한은 공증에 대한 불복의 절차 규정이 달리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공증을 작성자의 명의만을 확인하는 사실인증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은 변호사 자격자가 공증인이 될 수 있는데 공증인의 변호사 겸직은 불허한다. 따라서 중국 공증인은 변호사와 같은 사적 전문기관이 아니라 거의 국가기관의 준 공무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북한 공증법상에는 공증인의 자격에 관한 조항은 전혀 없다. 이는 곧 공증인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의 미흡함을 반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내 국가 공증기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의 국가 공증기관은 단지 공증만을 담당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공탁기관이나 등기소와 같은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북한에는 우리와 같은 부동산 등기제도가 없어서 등기 대신에 국가 공증기관을 통한 등록제도가 이를 대신한다. 나아가 법인등기에 준하여 국가 공증기관에의 등록제도가 우리의 상업등기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또한 공탁 업무 등도 국가 공증기관이 담당한다. 우리의 공증사무소와 북한 공증기관은 전혀 다른 별개의 기관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북한 공증법과 관련 국가기관에 대한 좀더 세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제한된 여건하에서 북한의 공증 법조문만을 중심으로 북한 공증제도에 대하여 극히 피상적으로 살펴보았다. 북한에서 실제 공증 업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는 현재로서는 달리 알기가 어렵다. 관련 연구 자료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 되는 등 또 다른 긴장 국면이 진행되고 있어 남북경협 논의가 시기상조다. 그러나 미래를 대비한 북한의 특수한 공증제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 공증법의 이해가 북한 경제와 사회제도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호흡을 길게 하면서 북한법 전반에 대한 점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감히 기대해 본다.